문화 ,영성

[스크랩] 권위의 본질-사랑과 희생과 고난

빛에스더 2017. 6. 20. 07:37

본문말씀: 빌립보서2장5절~11절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어떤 공주병 끼가 약간 있는 엄마가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엄마는 음식도 맛있게 잘하고 얼굴도 이쁘지? 이것을 네 글자로 뭐라고 하지?”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 엄마는 속으로 아들이 ‘금상첨화’라고 대답해줄 것을 기대하고 물었습니다. 

아들이 조금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대답했습니다. “자화자찬?” “아니! 그것 말고 다른 말!”

그랬더니 아들이 또 생각하다가 “과대망상?” 이렇게 대답합니다. 엄마는 속상해서 또 말합니다.

“금자로 시작하는 것 있잖아?” 그랬더니 아들이 또 대답합니다. “금시초문?”

얼굴 이쁘고 음식 잘하는 것만 가지고는 가족들의 인정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저는 어떤 사람에게 진정한 권위가 있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우리의 부모님들께서는 우리보다 더 못 배웠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딱히 잘 하는 것도 없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부모님들을 존중하는 것은 부모님께서 우리를 사랑과 희생으로 키우셨기 때문에 우리의 부모들에게 권위가 있는 것입니다.

출중한 지도력과 박식한 사람, 뛰어난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권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희생이 있는 사람이 권위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것은,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 이시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권세와 권위를 가지시는 이유는 그분께서 우리를 죽음에서 살리시기 위하여 온몸에 채찍을 맞으시고 머리에 가시관을 쓰셨으며 십자가에 달려 양손과 양발에 못 박히시고 옆구리에 창을 맞아 물과 피를 흘리셨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와 권세의 근본은 그분의 십자가 위에서의 사랑과 희생 때문이기도 합니다.


오래 전에 제가 '스파이더맨' 이라는 영화를 본 일이 있습니다. 다 만화 같은 내용이고 그냥 눈요기 감으로 

보았는데 딱 한 장면 저를 감동시킨 장면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보고 스파이더맨이라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사람이 혹시 크리스챤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많은 승객들을 태운 열차가 어떤 사건으로 인해 초고속으로 달리다가 고가철로로부터 떨어질 위기에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죽고 희생될 절대 절명의 위기의 순간에, 스파이더맨이 자기의 몸에서 나오는 

거미줄로 사력을 다해 열차를 멈추게 해 승객들을 살리고 스파이더맨은 기절을 했는데, 위기일발의 순간에서 스파이더맨으로 인해 살아난 사람들이 자기들의 생명을 살리고 기절한 스파이더맨을 공손히, 그리고 심지어 경건한 마음으로 바닥에 뉘우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스파이더맨을 공경하는 것은 스파이더맨의 초능력 때문이 아니라 그가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려고 달리는 기차 앞에서 사력을 다해 거의 자기 몸이 찢어지기 직전까지 막아서 사람들을 살린 그 희생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보고 저 자신 마음에 감동과 함께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나는 과연 영원토록 저주받고 지옥에 빠져 들어갈 나를 살리시기 위해 채찍 맞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주 예수님께 얼마나 감사했으며 얼마나 그 은혜에 보답했나 하는 생각을 하니 송구스러운 마음뿐이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적지 않은 수의 예수믿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경에서 말하는 복이라는 개념은, 솔직히 세상사람들이 추구하는 복과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악과 저주를 홀로 담당하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 승천하심으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구주로 영접하고 그 피 공로로 구원을 얻었는데, 기도와 간구의 내용은 당장 닥친 어려운 문제를 풀어주시고, 무병장수하고, 살아가는 동안 풍요로운 삶을 살도록 은혜를 배풀어 달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것들도 필요하여 간구해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 예수께서 우리를 살리시려고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시고 보배로운 피를 흘리신 것은 우리를 이 땅에서 잘먹고 잘살게 하시기 

위함이 아닙니다.

이것은 세상사람들이 구하는 것이고 불교나 천주교를 믿는 사람들, 점쟁이 집에 찾아가 점치는 사람들이 

구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이 세상에서의 삶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마음에 구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인생의 초점이 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데 있고, 하나님 아버지의 유업을 이어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들을 이루어 드리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은 우리 작은 머리로는 이해할 수가 없고 알수가 없습니다. 아브라함도 고향을 떠나 

가나안복지로 갈 때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갔습니다.

7년 풍년과 7년 흉년의 세계적인 격랑 속에서 이스라엘을 구하시고 전 인류 구속사역을 이루어 나가시기 

위한 요셉을 향한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을 요셉은 전혀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 하나님은 요셉에게 꿈을 주시고 그 꿈을 이루시려고 형들에게 미움받고 어린 나이에 노예로 팔려나가고 죄인 아닌 죄인으로 감옥에 갇히기까지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남들과 유난히 다른 자신의 인생을 한탄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 자신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를 이해할 수가 있었겠지요.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 건설과 유업을 잇는 일에 필요한 요소는 사랑과 희생과 고난 인 것입니다. 하나님나라를 이룩하고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가 바로 우리 개개인의 사랑과 희생과 고난입니다. 솔직히, 고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 고난이 숨겨진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죄를 지어서 죄의 대가로 받는 

고난이 아니라, 자신이 잘못한 것이 없는데 하나님의 뜻을 행함에 있어서 많은 시련과 고난이 따르는 것

입니다. 이것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믿음입니다. 어떤 믿음인가요? 이것을 이기기 위해서는 성령께서 함께 해주시고 이것을 이길 수 있게 힘을 주시며 이것을 이기고 나서는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며 하나님의 나라가 나의 믿음의 시련으로 인하여 이 땅에 건설될 수 있다는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는 원대한 꿈을 가지는 믿음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는 것을 보는 믿음의 눈을 가지는 것입니다. 성경말씀 베드로전서1장6절~9절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함이라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받으신 고난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존귀하고 고귀한지 천사들도 부러워하며 그 고난의 신비를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1장11절~12절에 보면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고난과 희생과 사랑은 신비입니다.

우리는 고난을 원치 않지만, 고난을 통해서 영적인 성숙이 이루어집니다.

고난을 통해서 우리의 몸에 더덕더덕 붙어있는 자아와 세상적인 욕심과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육신적인 성품이 떨어져나가 영적인 성숙을 이루어나가고 하나님과 교제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호랑나비가 번데기에서 빠져 나와 파란 하늘을 날아가기 전에, 호랑나비가 겪어내야 하는 고난이 있습니다. 애벌레가 번데기 속에서 빠져 나와야 하는데 번데기 속에서 조그만 구멍을 내고, 그 구멍을 빠져 나오기 위해 속에서 안간힘을 씁니다. 몸을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고 구멍을 더 크게 만들기 위해 사력을 다합니다. 그렇게 오랜 씨름을 하다가 마침내 구멍을 뚫고 아름다운 호랑나비의 자태가 되어 하늘을 날아갑니다.

     


곤충학자들에 의하면 그렇게 번데기에서 나오려고 씨름하는 동안 번데기 속에 있던 호랑나비 애벌레의 몸에 모든 수분이 말라가며 힘을 얻어서 번데기에서 나온 후에 하늘을 날 수 있는 날개 짓 할 수 있는 힘이 생긴

다는 것입니다. 그런 씨름이 없이 나오면 날 힘이 없어서 그냥 땅에 떨어진다고 합니다.

우리가 겪는 고난은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그러한 고난을 통해서 세상을 이겨내고 악한 영들과의 싸움에서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때가 마지막이 되어서 악한 사탄마귀와 악한 영들은 우리 믿는 사람들의 가정을 파괴시키려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합니다. 조금 제대로 믿는 가정에는 엄청난 풍파가 밀려옵니다.  그래서 소위 믿는 다고 하는 많은 가정이 깨지고 파괴됩니다.

미국 내에서 바이블벨트라고 불리는 텍사스주의 남침례교단에 소속된 가정들이 많이 파괴되고 이혼을 겪습니다. 이런 것들이 예수 믿는 가정을 파괴시키려는 악한 사탄의 영들이 일으키는 장난질이고 계략입니다. 

이런 고통스러운 가정문제들에서 회복되려면 엄청난 사랑과 희생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희생과 사랑과 고난을 통해서 가정은 회복될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사랑과 희생과 고난은 우리의 인간적인 노력 가지고는 되지 않습니다.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개입과 성령하나님의 감동 감화하심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어려움에 처했을 때와 각 개인이 겪는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간섭하심과 임재하심을 위해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도움과 안위하심의 손길이 닿게 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권위의 근본은 사랑과 희생과 고난입니다.  그리고 믿는 사람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이 땅에서 잘먹고 

잘 사는 풍요로운 삶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이 닥치고 고난이 엄습할 때 이것을 믿음으로 이기고 

승리함으로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유업을 잇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시각의 초점을 이 땅에 두지 말고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에 맞추어 비록 하나님의 

나를 향한 원대한 계획이 당장 눈에 보이지 않아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고난을 뚫고 나아가야 합니다. 

받을 영광이 크면 고난도 크게 마련입니다. 유달리 남보다 고난이 크면 그만큼 받아 누릴 영광도 큰 법

입니다. 이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시고 성령께서 주시는 힘으로 승리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빛과 흑암의 역사 (성경연구,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글쓴이 : barnabas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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