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04:1,33-35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는 심히 위대하시며 존귀와 권위로 옷 입으셨나이다
내가 평생토록 여호와께 노래하며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
나의 기도를 기쁘게 여기시기를 바라나니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로다
죄인들을 땅에서 소멸하시며
악인들을 다시 있지 못하게 하시리로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할렐루야
존귀하신 여호와 나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영원히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주님께
감사와 찬송와 영광과 경배를 올립니다.
이제 눈이 침침해져 갑니다.
등이 굽어지고 체력은 예전만 못합니다.
더 눈이 침침해지기 전에
더 언어들을 잃어가기 전에
내놓아야 하는 하나님의 재산을 꺼내놓습니다.
애초 저의 것이 아니요
처음부터 제게 있던 것도 아니고
그런 기억을 갖게 해달라고 빌어서 생긴 삶의 궤적도 아닙니다.
그래서 이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이 오셔서 데리고 가시든
저의 수명이 다하여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든
이 땅에서 맡기셨던 주님의 가르침은
저의 뇌에 힘이 있을 시간에
주님의 마당에 다시 풀어놓아야 함을 저는 깨달아 갑니다.
천주교에 대하여 말하려 합니다.
3일을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말씀하신 기도의 분량이 찼는지는 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꿈을 꾸었습니다.
'어떻게든 글을 쓰게 하겠다' 하시는 목소리를 듣고
홍수가 범람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저는 120년 된 성당의 아랫집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독실한 가톨릭신자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얻기 위하여
모든 일을 제쳐두고 가톨릭 미사 기도문을 외우셨고
그렇게 두 분은 그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리셨습니다.
일요일 새벽에 태어나 3일만에 영아세례를 받았으나
무속신앙이셨던 할머님의 극심한 반대로
부모님께서는 성당에 다니지 못하셨습니다.
시골로 들어가 살다가
이후 열 살 되던 해에 다시 그 성당의 아랫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저는 누가 가보라고 알려준 것도, 시킨 것도 아닌데
동생 데리고 그 성당에 들어가 둘이 가만히 앉아있었습니다.
미사시간에 일어나라면 일어나고 앉으라면 앉고..
어머니는 말리시지도, 가라 하시지도 않으셨습니다.
저는 가다말다 하며 호기심으로 성당 주변을 맴돌다가 그만 두었습니다.
제가 청소년기 시절에 부모님께서는 할머님의 허락을 얻어
다시 성당을 다니실 수 있었습니다.
성당에서 청소년 야영캠프를 한다는 말에 저는 처음으로
학생부에 이름을 올리고 기도문을 외운 후 첫 영성체를 받았습니다.
얼마 후 파티마의 성모상을 천주교 교우 집집마다 순서대로 돌리며
집에 들여놓고 기도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저희 집에도 그 상이 도착하였습니다.
집을 깨끗이 치우고 중요하고 높은 분이 주무시고 가는 것처럼
집이 정돈되었습니다.
마지막 날 저와 동생은 부모님께 사정을 하여
그 상을 제 방에 들여놓게 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 날 밤 그 상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계속 소원을 말했습니다.
전신에 장애가 있던 저는 건강하게 해 달라고 간절히 빌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고 저는 자연스레 성당 사람들과 친분을 맺으며 자랐습니다.
묵주는 천주교 기도의식에 반드시 함께 하는 물건인데
사도신경, 주기도문, 성모송, OO의 신비 O단, 등의 순서로 하여
한 바퀴를 도는데 성모송을 53번을 하도록 되어있는 물건입니다.
시작하기 전에 처음 성모송을 세 번 한 후
각 단의 제목을 말하고 성모송을 10번 하여
5단까지 하면 성모송을 53번 하였습니다.
성모송은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기뻐하소서
주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 또한 복되시도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여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이었습니다.
주기도문을 한 번하고 성모송을 53번 하였습니다.
그리고 젊고 어렸던 저희 학생들은
묵주를 되도록 예쁜 것을 고르려고 애를 썼고
생일이나 성탄절이나 세례일 등이 되면 더 색이 예쁘고
더 예쁜 구슬로 만들어진 묵주를 사려고 성당 안의 판매대를 기웃거렸습니다.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
하신 말씀이 있는지도, 성경에 존재하는지도 몰랐습니다.
성모상은 작은 것부터 큰 것 까지 매우 다양했는데
왕관을 씌우고 화려한 옷을 입은 모습으로 만들어진 것들도 있었습니다.
저를 비롯하여 집집마다, 그리고 방방마다 이 성모상을 하나씩 세워두었고
성당에 들어갈 때면 출입구에 들어가기 전에 밖에 있는 성모상 앞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기도하고 들어가라고 성당에서 배웠습니다.
그렇게 자라나다가 대학에 들어가면서 자연스레 성당을 나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후 걸을 수 없을만큼 몸이 아파 집에서 수술을 기다리고 있을 때
제 방 책장에 꽂혀있던 기독교 신약성경을 발견하였습니다.
가톨릭 미사시간에 쓰는 매일미사 책 외에는
성경이라는 것을 접해보지 못했던 저에게 모든 내용은 생소했고
예수님께서 베들레헴 마을에 태어나셨다는 장면 말고는
거의 모두가 처음 읽어보는 놀라운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방에 틀어박혀 성경을 읽다가 너무 좋아서
노트에 베껴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혼자 궁금해하다가
수술실에 들어갔습니다.
이후 수술이 성공하여 저는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었고
혼자서 하나님께 서원한 대로
'다시 걸을 수 있게 해 주신다면 하나님의 바가지로 쓰시다가
더 못 쓰시겠을 때에 그 때 거두셔도 좋다고..' 했던 그 서원대로
우연히 한 할머님을 섬기게 되었고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한 분의 죽음을 겪었으며
그 죽음 앞에서 한없이 작아져 모든 섬김도 만남도 다 접었습니다.
그렇게 10년을 완전히 세상 일에 사로잡혀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저의 영혼은 피폐하고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암흑 속으로 치달아
빛이 없는 모든 곳을 훑고 살아가는 삶이 되었을 때
한 목사님께서 저희집을 방문하시게 되었습니다.
교회를 다니지는 않았지만 그 당시 목사님께서 두고가신 성경책을
밤에 몰래 읽기 시작했고
아이의 이유식 살 돈마저 가문 땅에 물방울 스미듯 흔적을 감추었을 때
그 목사님의 교회에 들어가 몸부림치며 울었었습니다.
그냥 몸부림치며 울었었습니다.
그 때
처음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 구체적인 말씀은 저와 하나님과 간직하고 싶어 여전히 제 가슴에 담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 때의 그 느낌은
제가 세계의 대문호라 하더라도 결코 글자로 담을 수 없을 줄 압니다.
저는 울다가 멈추고
어디선가 말씀하시는 목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울음이 잠잠해지고 집에 돌아와 저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래. 내가 그동안 성당을 안갔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되었구나. 싶은 마음에
바로 다음날 오후
어린시절 학생 야영캠프부터 다녔던 성당에 들어가 앉았습니다.
수녀님 한 분이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다닌 성당.
아주 작은 규모에서부터 재건축하기까지 속속들이 다 알고 있는 성당.
성당 분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그 성당.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그 곳에 회개하는 마음으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려 찾아갔는데
뭐랄까요.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페인트조차 칠해져 있지 않은
생시멘트 감옥에 앉아있는 그 쌔한 그 느낌.
그것은 참으로 어떤 장식도 없고 창문도 없고 어떤 페인트칠도 없는
시멘트로만 된 이상한 쌔한 느낌의 상자 안에 들어가 앉아있는 느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있는 줄 모르던 제가
불과 하루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는데
제 집처럼 성당 구석구석으로 다 다녔던 그 성당은
시멘트 상자처럼 서늘하고 이상하다 못해 더 앉아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다음에는 조금 더 떨어진 곳에 있었던
제가 태어난 동네의 오래된 성당에 찾아갔습니다.
그 곳에서 영아세례를 받았고,
부모님께서 결혼식을 올리셨고
120년이 흐른 전국에서도 유명한 성당.
저는 너덜너덜해진 영혼으로
고향이라 여겼던 그 성당에 들어갔습니다.
아무도 없는 빈, 커다란 성당에 앉았습니다.
어머니 품 속을 찾아 가듯
갈 곳 없어 발발 떠는 새처럼 거기 기어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 눈에 보였습니다.
성당의 천장 각 구석마다 놓여있는 작은 인형들과
신부님께서 미사를 집전하시는 높은 단 앞에 놓여있는
인형들. 가득한 인형들.
그것은 어린시절 저희 동네에 있던 절 안에
이 곳 저 곳에 놓여있던 불상들, 동자상들과 똑같았습니다.
정말 놀랐고
이것이 왜 그동안은 눈에 안 띄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저는 불 꺼진 성당에 앉아 그 인형들을 보다가
그냥 나왔습니다.
저희 천주교 세례명은
소화 데레사였습니다.
지금도 부모님께서는 성당에 다니십니다.
천국에 대해 말씀드려도
우상이라 말씀드려도 받아들이지 않으십니다.
저는 부모님을 지극히 사랑합니다.
장애가 있는 자녀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셨을지
저는 이제 진심으로 어머니의 마음을 만져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매일을 두고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부모님을 구원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성경에는 써 있었습니다.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이르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눅11:27)
성모송.
계속 외워야 했던 성모송의
'주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 또한 복되시도다' 에 대한 내용을
주님은 정면으로 반박하셨음을 읽고
저는 숨을 훅. 내쉬었습니다.
그럼 그동안 나는 무얼 말해왔던 건가. 하는 바윗덩어리 같은 것이
가슴에 쿵 부딪히는 것....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하였을 때의 일입니다.
이 때에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골로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러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니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문안함을 들으며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가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눅1:39-45)
'주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 또한 복되시도다'는
엘리사벳의 말에서 유래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주의하여 성경을 읽어보면서 이에 해당하는 말씀을 찾았으나
그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 세계에서 그 문구를 말해야 천주교 세례교인으로 합격에 필요한
필수암송문구가 될 것을 엘리사벳은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엘리사벳은 그러나 마지막 구절에 분명히 말했습니다.
마리아. 특정한 네가 아니라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다고.
성모송은 또 말합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여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이렇게 '성모여 빌어주소서.' 라는 문구는
아직도 천주교인들의 집에 있습니다.
예수님께 직접 기도하지 못하고
성모여 빌어주소서. 나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예수님의 4대 복음 어디를 보아도
너희가 내게 직접 기도할 자격이 없으니
너희는 반드시 나를 낳은 어머니 마리아에게 빌어달라고 부탁해야
내가 그것을 들을 것이다. 라고 하신 곳이 없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3-17]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예수님께서는 결코
너의 기도를 누구에게 부탁하라고 하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행하시리라 하셨고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보혜사를 구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 있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천주교의 '마리아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의 기도문구는
예배시간, 기도시간, 부활절, 성탄절, 심지어는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장례식장에서도 계속 반복되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참혹한 일인지 다시 다음 글을 적습니다.
2012년 저의 아이가 수술을 받았습니다.
아이는 어려서 수술 후 무통주사라는 것을 맞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일반 진통제로 견디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리의 뼈를 완전히 잘라내야 하는 수술이었습니다.
그 두려움과 고통은 이루 형용할 수 없는 크기입니다.
수술을 마치고 나온 아이는 바들바들 떨었고
엄마. 엄마.
엄마라는 말만 계속 하였습니다.
고통을 이기지 못해 토하고 떨고 하는 아이의 손을 잡고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다리에는 대못이 여러개 박혀있었습니다.
그 때 그 심장이 쥐어짜지는 통증은
겪어보지 않은 부모는 아마 상상이 어려우리 만큼
마른침이 계속 넘어가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아이는
'무통. 무통.' 하면서
무통주사를 놓아달라고 매달렸고
결국 마약성분으로 분류되어 성인환자에게만 투여되던 무통주사는
아이에게 맞혀지고
그렇게 아이는 마약과 같은 주사를 맞고서야 잠에 들었습니다.
다리에 대못을 박고
피 묻은 몸으로 떨고 있는 아이 옆에 서 있는 나는
눈물도 흘릴 수 없었습니다.
숨 쉬는 것도 쉽게 할 수 없었습니다.
간신히 잠든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이런 어머니에게 와서
'우리 아들 대학 좀 합격시켜 달라고 대신 빌어줘요'
'내가 죄를 졌는데 그것 없애달라고 빌어줘요'
그러는 사람들이 제정신인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럼 이루어질 거라고 믿는 그 믿음이 제정신이었냐고 묻는 기막힘...
천주교 신자들은 집의 가장 중앙에
'고상'이라 하는
예수님 십자가에 못박혀 매달려 계신 형상을 만들어 걸어놓습니다.
그리고 그 밑에서 케이크에 촛불을 꽂아 불을 붙이고
생일잔치도 하고 다른 사람 비방도 하고
밥도 먹고 웃기도 합니다.
나는 예수님을 알고나서 알았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나무에 못 박혀 계시다면
그렇게 못 박아놓고 벽에 걸어놓은 채 잠들 수 있을까.
내가 그 아래에서 밥이 넘어갈까.
그게 사람일까... 사람의 할 짓인가...
그 깨달음이 있기 얼마 전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하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저는 못한다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무조건 못해요. 저 무조건 못해요' 하고 있을 때
주님의 음성이 있으셨었습니다.
'언제까지 나를 못박아 두려느냐.'
그 말씀 듣고 고꾸라져 울었습니다.
저는 그 말씀이 어떤 뜻인지 그냥 냄새처럼 맡아졌습니다.
친정집의 중앙에 걸려있었던 그 '고상'
제 학생시절 방에 놓아두었던 그 '고상'
지금도 부모님 집의 중앙에 못을 박고 걸려있는 그 '고상'
그 밑에 때로는
'축하합니다. 생일을 축하합니다.'라는 문구의 색종이도 붙였었고
풍선도 붙여놓았었고
파티도 하였던
그 고상.
나의 아버지라면 내 등 뒤로 피 흘리며 못 박히신 아버지를 벽에 세워두고
뒤돌아 앉아 밥을 먹을 수 있는가..
그리고 무통주사조차 놓을 수 없어
몸을 바들바들 떨며 못박힌 채 누워있는 아들 앞에서
숨도 못 쉬고 있는 엄마에게
'나 좀 위해 이 아들한테 좀 부탁해 줘.
내 부탁은 말야.
우리 아들이 이번에 취직하는데 합격하게 해 줘...'
'아들 낳게 해 줘요'
이런 부탁을 할 수 있을까.
오열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나는 힘이 없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주변에 천주교에 다니는 분이 계신지요.
성모송이 성경의 어디에 그 글이 적혀있는지
한번이라도 성경을 뒤적여 보아 달라고..
그리고 당신의 아버지를
언제까지 못박아 둘 것이냐고.
주님께서 제게 물으셨던 그 질문을
세상의 많은 천주교인들에게
전합니다.
나의 주님께서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나를 언제까지 벽에 못 박아두려느냐'
주님을 내려드립니다.
그리고 주님의 못을 빼드립니다.
그리고 주님
주님을 깊이 끌어안습니다..
내 온 몸이 주님의 피로 범벅이 됩니다..
사랑합니다.
나의 하나님.
홀로 높임 받으소서.
'문화 ,영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현실과 참 믿음 (0) | 2017.06.15 |
---|---|
[스크랩] 당신은 믿음생활의 규칙(Rule)을 지키십니까? (아니요?^^) (0) | 2017.06.09 |
4월 6일” 나라와 민족을 위한 대국민 금식의날!!! (0) | 2017.04.02 |
[스크랩] 한국을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사두 선다 셀바라지) (0) | 2017.03.17 |
[스크랩] 로비에 고영태 얼굴이…은혜와진리교회를 가다 (0) | 2017.03.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