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더 깊은 삶’, ‘영적 승리’,
그리고 ‘자신에 대해 죽는 것’에 대해 많이 말하지만,
우리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으려고 계속 노력한다.
십자가에 못 박지 않으려고 애쓰는 부분이
우리의 전체에서 매우 작은 부분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우리의 영적 문제와 패배의 원인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의 지극히 높은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겠다는 마음으로 충만해질 때
비로소 우리는 십자가에서 죽을 수 있다.
사도 바울은
“나는 저 십자가에서 죽기를 원하고
거기서 죽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기 원한다.
왜냐하면 내가 그분과 함께 죽으면
나는 더 좋은 부활에서 그분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라고 말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빌립보서 3:10 ).
그는 단순히
“(모든 사람이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할 것이므로)
그분이 나를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살리실 것이다”
라고 말한 것이 아니다.
그는
“나는 더 좋은 부활, 즉 그리스도의 부활과 같은 부활을 원한다”
라고 말한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기를 원했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한 번에 한 부분만을 죽이기 원하기 때문에
나머지 작은 부분들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는다.
사람들은 충만히 채워달라고 하나님께 구하지만
그런 기도를 하는 중에도 그들 안에는
교묘한 자기기만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런 내면적 모순 때문에
그들의 의지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드리는 단계까지 나아가지 못한다.
이런 모순적인 상태에서 계속 살아가는 사람은
행복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항상 조금씩 십자가에 달리는 사람은
그런 과정에서 행복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단번에 십자가에 못 박히고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께 맡기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변명하지 않는다면,
즉 우리가 죽는다면 그 다음에는 부활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승리의 길을 가길 원한다면,
우리는 정상을 향해 가다가 중간쯤에서 멈추어버린
평범한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벗어날 것이다.
우리의 유익을 포기할 때 비로소
우리 안에서는 그분의 최고의 뜻을 찾겠다는 욕구가 솟아오를 것이다.
- A.W.토저, 철저한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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