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 요한복음 4장 20,21
어릴적
여행을 갔다가
근처 절에 들리면
입구에서 사천왕을 보게된다.
동,서,남,북을 지킨다는...
그들의 역할이나 임무에 상관없이
그 우락부락한 눈과 무시무시한 무기에
어린 나는 겁을 덜컥 집어먹었었다.
책이나 그림
만화를 보며
갖게되는 지옥의 이미지는
기름에 튀겨지거나 뜨거운 물속에서 절규하는,
또
젓가락이 너무 길어 배고픔에 시달리는
그런 이미지다.
사지가 찢기고,
머리에 드릴을 박고,
이를 뽑고,
채찍으로 맞고...
나이가 들면서 그런 이미지나
고통을 떠올리면
심드렁해진다.
사천왕의 눈빛처럼
상대에게 겁을 주는 과장을 느낀다.
오히려
작두위에 올라 탄 무당의 눈빛이 더욱 등골 오싹하다.
그래도
고통은 무섭다.
그것이
지속적이라면 더욱 두렵다.
풀리지않는 의문,
찾을수 없는, 느낄수없는 의미.
같은 패턴의 무한반복...
해결되지 않는...
신체적인 것만이 아니어도
고통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다.
구설수도,
실연도,
경제적 실패도,
인간적 배신도,
어떤 의지의 좌절도,
평생 잘못된 길을 걸어가는 것도,
때론
죽음보다 참기 힘들다.
성경을 읽다가
지옥이 어떤 곳일까
생각해본다.
예전부터
나에게 어떤 장기를 하나 떼어내야 한다면
거꾸로
어떤 장기를 최후까지 지키고 싶을까
생각해보았다.
벙어리가 되어도 좌절하게 되고
다리가 없어도 좌절하게 되고
고추가 없으면 .......ㅜㅜ
눈이 없으면
아주 무서울것이다.
어떤
영화를 만든다고 가정하면
죤 케이지의 '해프닝'처럼
몇시간이고
암흑의 화면만을 응시해야 한다면
그건 아주 무서운 경험일것이다.
그누가
tacet마저 한 조각이 되어버린
거대한 '아무것도 없음'을
통째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건
'지구 최후의날'따위와는 비교되지 않는
정말 무서운 영화가 될것이다.
(물론 보지도 않겠지만)
영화를 보다가
정말 본인도 없어질지 모른다.
ㄷㄷㄷ
조부모의 마을은
충청도 마곡사 근처
전쟁도 비껴간 아주 깊은 산골이었다.
한학이 깊으신 마을의 어른이
나의 이름을
지어주셨다한다.
(물론 저주한다.ㅜㅜ)
그분이 젊은날
초가집 좁은 방안에서 주역을 읽다가
몇번이고 방문을 박차고 도망나오셨다 한다.
그분은 무얼 보셨을까?
빛이 없다.
빛이 없다.
빛이 없다.
....
빛이 없으면
생명도 없고
형체도 없고
결국
소리도 없게 된다.
어쩌면
선과 악따위를 논하는것도
좋은시절 얘기일수 있다.
절대어둠안에서
사사로움이니, 의니, 인이니
있을리가 없다.
가족도 해체되고
법도 국가도 신뢰도
인간적인 최후의 보루도
먼지로 부서지고
그마저도 자취를 감출것이다.
(자취를 감춘줄도 모를것이다)
부처도 없을것이니
그것이
스올아닐까......
[출처 : blog " my old roo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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