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
유다 왕 아하스 당시 최대 강국은 앗수르였습니다. 아하스 왕은 북 이스라엘과 아람 연합군의 침공을 받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뇌물을 주고 앗수르와 동맹을 맺습니다(왕하 16:7-9). 그래서 외적인 위협은 사라졌지만 더 큰 위협과 심판이 앗수르 왕으로부터 주어지게 됩니다(17-25절).
아하스는 성취지향적인 사람이었고 모든 것을 스스로 하려고 했기에 좌절에 빠질 때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사야가 현재의 문제를 너무 염려하지 말고 급하게 어떤 일을 하지 말고 제 자리에 머물러 기다리라고 했지만 그 말씀을 거부하고 앗수르만 믿었기에 더욱 큰 환난에 빠졌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을 의지하지 않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 같아도 더 큰 문제가 생깁니다.
지금도 믿는다고 하지만 아하스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문제가 있을 때 하나님보다 사람을 의지합니다. 또한 친구, 은행잔고, 인맥과 배경, 그리고 지식과 머리를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려고 합니다. 물론 그것들을 전혀 무시해도 안 되지만 그것들을 하나님보다 앞세워도 안 됩니다. 그러면 한 가지 문제가 해결되어도 더 큰 문제가 생깁니다.
< 그래도 희망은 있습니다 >
아하스의 모습은 결국 연약한 우리 자신들의 모습입니다. 사실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며 산다는 것이 이론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절망적인 문제를 만납니다. 그래도 희망은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믿는 자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십니다. 이제 더욱 하나님만 바라보며 사십시오. 하늘을 목적으로 하면 하늘과 땅을 동시에 얻지만 땅을 목적으로 하면 하늘과 땅을 동시에 잃습니다.
진실한 믿음 안에서는 어둠이 임할 때 주님의 은혜가 더 귀하게 느껴집니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외적인 기쁨 안에 내적인 슬픔이 있지만 진실한 성도에게는 외적인 슬픔 안에 내적인 기쁨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목숨은 지금 남아있습니다. 지금도 팔팔하게 살아있는 것이 은혜의 표시이고 희망의 요체입니다. 진짜 희망은 희망이 없는 곳에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런 희망을 가지십시오.
아침에 기쁜 얼굴로 나갔다가 저녁에 한 줌의 재가 되어 돌아오는 인생이 많습니다. 그런 세상에서 매일 마음껏 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감격입니까? 아무리 문제가 많아도 살아있다는 감격을 잠재울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큰 문제가 닥쳐도 그 문제 때문에 인생을 비관하지 말고, 환경과 사람을 증오하며 살지 마십시오.
일전에 납치범들에게 희생된 어떤 분이 납치범들에게 간절히 호소했습니다. “살려만 다오. 돈은 다시 벌 수 있으니까 요구하는 대로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주겠소. 지금 회사가 부도날 지경이니 다시 회사에 돌아가 회사를 살릴 기회를 주시오.” 살아있기만 하면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는 간절한 외침입니다.
이제 아무리 힘들어도 삶 자체를 희망의 씨앗으로 삼고 다시 멋지게 일어서서 역전 인생을 만드십시오. 그래서 희망이 없는 곳에서 희망을 감전시키는 희망 선교사들이 되십시오.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일은 희망을 전하는 것이고, 세상에서 가장 나쁜 죄는 희망을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세상에 짓눌려 희망을 포기하고 마음이 좁아진 사람들에게 희망 바이러스를 감염시키는 일은 돈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최상의 서비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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