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영성

숭례문과 갈보리 언덕

빛에스더 2008. 8. 5. 04:42

                              

              

 

 

숭례문과 갈보리 언덕

 

 

 

내가 어릴때 보았던 숭례문은 과거 역사의 이정표로 남아있긴 했지만 

일제때 성벽을 헐어 도로를 내어준 이래 이미 드나들 이유도 길도 잃어버린 채 

도시교통의 장애물일 뿐인 고립된 외딴 섬이 되어 있었다.

근대화를 상징하는 주변 경관으로 바뀌면서 

산뜻하고 경쾌한 건물들이 날씬하게 뻗어가는 사이

숭례문은 사라진 왕조가 던져놓고 간 피난 보따리 마냥 

분주한 길 사이로 덩그마니 버려진듯 어울리지 않는 모양새로

2층 누각을 이고 가까스로 침몰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 형상이었다.

 

그 존재의미에 대한 통찰이 없이 바삐 지나치던 군중으로부터

무심한 결례의 시선을 견뎌오던 숭례문이지만,

최근 방화로 불탄 자리를 보며 사람들이 갑자기

크나큰 상실감과 당혹을 느끼는것은 무엇때문일까. 

도시 한복판에 처참하게 무너진 폐허를 보면 

더욱 눈둘 곳이 마땅치 않게 여겨지지만,

우리가 잃은 것, 그리고 다시 찾아보아야 할 것은 

6백년을 이어왔던 누각 건축물과 역사 이상의

어떤 다른 것이란 사실을 가르쳐주는

새로운 표지가 되어 드러난 듯이 보인다.  

 

나는 불탄 모습을 사진으로 볼뿐이지만

도시 한복판에서 남아있는 잔해가

앙상한 팔을 펼쳐 하늘을 올려다 보는듯한 

검붉은 상처의 깊은 표정은 바로 이시대

우리들의 갈보리 언덕이 되어 내마음에도 다가온다.

2천년전 예루살렘 성을 들어가는 길목 잘 보이는 언덕에 십자가를 세워

예수그리스도를 못박고 '유대인의 왕'이라 써붙였던 명패의 메아리를 듣는다.  

다행히 숭례문 현판은 화재에서 살아남았단다.

 

사대문과 종각의 이름을 조선왕조 건국이념인

유교의 다섯가지 덕목을 따라 인의예지신으로 지었고

그중에서도 숭례문 현판은 널찍이 가로로 누운 다른 문의 현판들과 달리

세로로 써 세워 달았다는것인데, 남쪽에서 오는 화기를 막으려는

풍수적인 뜻이 있다지만 그만큼 여유보다는

각성을 촉구하는 직립의 위엄이 예사롭지 않다. 

광화문 앞의 해태상과 함께 눈을 부릅뜨고 지키는 

수문장 역할을 자임했던 뜻은

예를 갖춘 자의 늦추지 않는 겸손과도 통한다. 

 

서울보다 역사가 훨씬 오래된 예루살렘의 구도시에 가면

성벽과 성문이 아직 남아있고 원래 있던 11개의 문 가운데

7개는 오늘도 사람들과 물자가 소통하는 기능을 다 하고 있다.

성지순례 도중 호젓한 시간에 혼자 지도를 들고 

다마스커스 게이트(Damascus Gate)를 통해 들어가자

바로 붐비는 시장통이 되던 기억이 난다,

시온문(Zion's Gate)은 1948년 이스라엘 독립전쟁 때의

기관총 탄흔을 수없이 받아안은채로 서있고 

그 앞에서 아랍인 빵장수가 한가롭게

수레를 걸쳐놓고 빵을 팔던 모습도 생각난다.

 

예루살렘에서 가장 인상적인 문은 성벽 동쪽에 자리한 골든 게이트(Golden Gate)였다.

종말의 때에 메시아가 이 문을 통해서 들어온다는

고대로부터의 유대 백성의 믿음을 간직한 두개의 아치형 통로로 세워져 있다. 

하지만 이슬람 교도들이 예루살렘을 지배하게 된 이래 골든 게이트는 돌로 봉해 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유대인들은 아직도 이곳을 통해 입성할 메시아를 기다리는 희망 가운데

이 문을 바라보는 자리에 묘지를 만들어 마지막 때를 기다리며 누워있다.

'아름다운 문'이라고도 불리며 하느님의 현존(Shekinah)이

이문을 통하여 성전으로 들어온다고 믿었던 거룩한 장소이다.  

 

만약에 이 문에 한국식으로 현판을 걸었다면 악의 기운이 들어오는것을 막고 

하느님의 순수한 영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예를 갖춘 숭례문처럼 

수직 현판을 만들어 세웠을 법한 문이다.

그런데 과연 하느님은 인간이 돌벽을 막았다고 해서 못들어오실까?

우리 마음을 열라고 호소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다면

예루살렘이라 한들 거룩한 도시라는 이름은 아무 의미가 없다. 

 

'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이 불이 진작에 타올랐다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

 

불기운을 막기위해 숭례문 현판을 세로로 달고,

재난을 막기 위해 성벽을 쌓고

메시아의 입성을 막으려고 예루살렘의 아름다운 문을

돌로 봉해버렸다지만,

이제는 먼곳에서 오는 불을 막연히 두려워 하며 벽돌을 올릴 때가 아니다. 

 

우리에게 돌아온 21세기의 갈보리 언덕을 외면하지 말고,

그곳에 오르기를 두려워하지 말 일이다.

옷이 아니라 마음을 찢으며 돌아오라고 하느님이 부르시는 계절이다.

숭례문의 폐허를 보며 듣는다.

 

- 잿더미 속에서 불사조가 솟으며 외친다.

너희는 멀리서 오는 불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사람의 마음을 쏘아 꿰뚫어보시는 하느님을 두려워 하여라.

네 마음속에서 일어나 모든것을 태우고,

순수하게 하느님의 영 가운데 

정화시키는 불을 나서서 청하여라.

'두려워 말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는

말씀에 희망을 두어라.

 

 

 

 

 

2/19/2008

 

[ 글 : austin 부제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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