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칼로
프리다칼로에 대하여
일곱살에 소아마비를 앓아 한쪽다리가 정상적으로 발육하지 못하고
열 여덟 살에 당한 교통사고로 30년에 걸쳐
척추와 오른발을 서른 세 차례나 수술 받았으며
세번에 걸친 임신도 유산으로 실패한 끝에
47세로 죽은 멕시코의 여성화가 프리다칼로(1907-1954)는
자신의 고통에 찬 생애를 적나라하게 화폭에 옮겼다.
칼로의 생애와 그림을 말하자면 그녀의 남편 디에고 리베라와 함께 언급해야 한다.
멕시코 미술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탁월한 민중화가 리베라는
특히 벽면화가 유명한데 멕시코시티 교육청 회랑과
테라스를 장식한 거대한 연작 벽화는
그 곳을 방문하는 관광객에게 빼놓을 수 없는 관광코스이다.
원시시대부터 현대까지 멕시코 역사를
민중적 시각에서 재현한 회랑의 벽화를
나는 세차례 멕시코 여행때마다 보았는데
갈때마다 밀려다녀야 할 만큼 관광객으로 붐볐다.
작은키에 날카로운 이목구비 특히 검고 짙은 눈썹이
미간을 지우고 맞붙은 아름다운 화가 지망생 프리다칼로가
당대 멕시코 최고의 화가 리베라와 결혼하기는
그녀의 나이 22세때의 일이엇고
고릴라 같은 거구의 이혼남인 리베라는 35세였다.
둘은 고집이 세고 직선적이며
격렬한 감수성의 소유자들이라 25년에 걸친 사랑은
수많은 역경을 넘을 수 밖에 없었다.
서로가 서루를 배신하는 과정을 거쳐
별거와 이혼 재결합을 되풀이 했다.
야만적인 바람둥이 디에고가
자신의 동생 크리스티나마져 건드리자
프리다도 다른 남자를 찾았고 동성애도 가졌다.
프리다의 유명한 연애사건은
당시 리베라의 도움으로 멕시코로 망명해서
프리다의 집에 머물던
러시아 볼셰비키혁명의 주역 트로츠키와의 애정행각이다.
리베라와 브리다는 서로를 불신하고 미워했으나
그들 내면 깊숙이 이 지상에서 운명을 함께 할
단 한 사람의 연인이며 예술의 동반자임을
서로가 확인하고 있었기에 그 사랑은 세속을 넘어선
드라마틱한 서사시요 애증의 파노라마였다.
그녀는 리베라의 못된 행실에
여성으로서 질투하고 증오하며 괴로워 했으나
리베라의 예술적 열정과 그가 창조해내는 작품앞에서는
한없는 존경심을 바쳤으며
컴뮤니스트로서의 정치적 동지로 그를 이해했고
끝내 모성같은 너그러움으로 그를 품었다.
<유모와 나>는 유아적 인디오 보모의 젖으로
자신이 양육되었음을 매개로 하여
건강한 아기로 다시 태어나 전설 속의 인디오 여신으로부터
꽃즙같은 젖을 먹으며 싱싱한 육신으로 성장하고 싶다는
칼로 자신의 소망을 신화적 상상력에 결합시킨 작품이다.
칼로는 대부분의 그림에 자신을 모델로 등장시켰다.
소녀시절부터 꿈이었던 리베라의 아기 갖기가
유산으로 실패한 아픔을 풍선처럼 띄워 올린 태아를 통해,
또는 수술과정의 모진 고통을 장기마다 못에 박혀
피 흘리는 자신의 알몸을 통해 섬뜩하리만큼 자극적으로 표현했다.
1954년 칼로는 점점 썩어가는 다리와 척추를
일곱차례나 수술받았고 아홉달 동안 입원했다.
그 과정을 통해 칼로는 더 이상 삶을 지탱할 수 없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다.
병원측은 사인을 폐기능 소진이라 밝혔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녀가 육신의 고통과 생존의 절망을
더 이겨내지 못한 자살로 믿었다.
멕시코가 낳은 위대한 화가 프리다 칼로의 장례는
국장으로 치러졌다.
장례식날 리베라는 칼로의 관위에
불법화된 멕시코 공산당 당기를 덮어주는 쇼를 별여
참석한 정부관료를 긴장시키기도 했다.
예술의 동반자 겸 정치적 동지였던 둘의
그렇게 질긴 인연도 끝나 버렸다.
프리다 칼로(Frida Kahlo, 1907-1954) : 멕시코 여류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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