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장 1절 - 15절
6절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 찌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보혜사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안색을 변치 말자는 말씀을 증거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만드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닮은 사람을 지으시고도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몸 전체도 닮았겠지만 팔, 다리 등 신체 각 기관도 하나님을 닮았겠지만, 특히 얼굴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것 같습니다. 얼굴 중에도 안색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습니다.
하나님의 안색을 성경을 읽으면서 상상한다면 하나님의 얼굴은 사랑의 얼굴이시고, 기쁨의 얼굴이시고, 평화의 얼굴이시고, 자비의 얼굴이시고, 온유의 얼굴이시고, 소망의 얼굴이심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 인간들도 원래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얼굴이었습니다.
아직 이빨도 안 난 갓난아기의 웃음의 얼굴을 상상해 보시면 죄가 없던 시절의 얼굴이 바로 그러한 얼굴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 올 수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갓난 어린 아기의 그 순박한 얼굴의 웃음을 볼 때, 할아버지나 할머니나 엄마 아빠의 마음이 녹아져 버립니다.
내가 태어날 때도 여러 분이 태어날 때도 그런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얼굴을 가지고 세상에 왔는데 지금은 얼굴이 많이 변했습니다. 안색이 변하였습니다.
나이 들어 늙어서 변한 것이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에 변하였습니다.
죄의 노예 가되어 미움이 생기면 안색이 변합니다.
눈을 요상하게 허옇게 눈깔을 올리면서 째려보는 얼굴이 되고, 시기의 얼굴이 나타나서 얼굴색이 변하고, 질투의 얼굴이 되어 빨갰다, 파랬다, 노래졌다 하고, 질병의 얼굴이 되어 창백하여지고, 분노의 얼굴이 되어 피를 얼굴로 모으고, 이렇게 하면소 오래 살다가 보니 안색이 변하여 갓난 아이 때의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얼굴이 다 사라졌습니다.
얼굴은 마음과 직결이 되어서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대개의 상태를 웬만한 사람은 알 수 있습니다.
인상이 고약하면 성품도 고약한 것 알 수 있고, 도둑놈은 나는 도둑놈이라고 얼굴에 쓰여 있다고 합니다.
피닉스 공항에는 세계에서 16번째로 복잡한 곳인데 수하물을 찾는데 도적을 안 맞습니다.
거기에는 사복 경찰이 지키고 있는데 남의 가방을 들고 가는 사람은 백발백중 다 잡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잘 잡는가 하고 하였더니 얼굴에 써 있는데 왜 못 잡냐고 합니다.
비행기를 타고 온 사람은 고공에 체공하였기 때문에 비행기를 안탄 사람과 구별이 된답니다.
저도 약국을 할 때 한 6개월 가량 손님을 대하다 보니까 사람 얼굴을 보면 무슨 병이 걸렸겠다. 는 것과 주머니에 돈을 얼마 갖고 약을 사러 왔다는 것이 얼굴에 보여서 거기에 맞추어 약을 권합니다.
100원짜리 갖고 약을 사러 온 사람에게 1000원짜리 약을 권하면 못 사가고, 만 원짜리 갖고 온 사람에게 1000원짜리 약을 권하면 시시하다 하고 약을 안 사갑니다. 그리하여 만원 짜라 가져온 사람에게는 9000원짜리를 권하면 약값 싸다 하고 잘 사갑니다.
제가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있을 때, 처방을 보고, 얼굴을 보면 죽을 사람 살 사람을 구별하게 됩니다.
목회를 10년 이상하니 말은 안하지만 대개 성도들의 신앙 상태를 훤히 알 수 있습니다.
성도가 많은 교회에서도 역시 설교할 때 설교가 들어가는 것을 본다면 교회의 믿음 현황과 성도들의 믿음 정도를 알 수가 있습니다.
과거 목회 초년생일 때는 김 장로에게 속아서, 십자가 붙들고 “내주를 가까이 하려 함은” 이란 노래와 “저 높은 곳을 향하여” 하며 부르는 장로에게 속아서 교회 돈 다 사기 당하고, 내 저금도 다 날린 적이 있지만, 지금은 몇 마디만 하여보면 신앙 상태를 알게 됩니다.
그러나 말은 안합니다. 안심하십시오.
이제는 하도 많이 속고, 사기를 당했고, 기도를 많이 하다 보니, 얼굴을 볼 줄 압니다.
말 뒤에 숨은 말을 들을 줄 압니다.
진짜 말은 얼굴로 말하는데, 입은 다르게 말하는 것을 읽을 줄 압니다.
심방을 가면 아이고 목사님 어서 오세요 하지만, 그걸 이제는 다 안 믿습니다.
초년생일 때는 나도 속았지만, 이제는 “바쁜데 뭐하러 왔어 빨리 꺼져” 하는 말을 얼굴에서 듣게 됩니다. 밥 먹고 왔다 해도, 안 먹은 사람 알 수 있듯이.
얼굴은 마음과 직결되어서 안색에 그 사람의 심색, 심보가 나타납니다.
전도서 8장 1절 “사람의 지혜는 그 사람의 얼굴에 광채가 나게 하나니 그 얼굴의 사나운 것이 변하느니라”
우리의 과거의 사나운 얼굴이, 나뿐 안색이 이제는 예수를 믿고,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천국과 지옥이 있는 것을 알고, 예수그리스도를 내 구주로 알고 있는 지혜를 가진 사람이 되었으니, 안색이, 그 얼굴의 사나운 것이 변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성도의 얼굴은 이제 변하여 모세의 얼굴 같이 광채 가나며 빛이 나는 환한 영광스런 얼굴이 되어야 합니다.
어느 교회는 조명 장치를 잘하여서 설교하는 목사님의 얼굴이 모세 같이 광채 나게 하니까 효과가 훨씬 좋더라는 목사끼리 하는 말이 있습니다.
조명으로 일어나는 광채가 아니라 마음속에서 울어 나는 광채가 나야 합니다.
지금 세상 사람들의 얼굴을 자세히 보십시오. 얼굴이, 안색이 변하여 모두 험상 굳고 악과 독이 잔뜩 오른 얼굴로 살아갑니다. 한국 국회의원들의 얼굴을 보십시오.
평화의 얼굴은 어디에서 누구에게서 찾을 수 있을까요?
이제 예수를 진실히 믿고 마음에 평화와 기쁨을 얻으면 안색이 되돌아오는 법입니다. 그러기 위하여서는 성령을 마음속에 모셔 들이면 기쁨의 얼굴, 사랑의 얼굴, 화평의 얼굴. 온유의 얼굴. 양선의 얼굴. 등 성령의 얼굴이 열매로 나타납니다.
우리 교회에 다니던 사람 중에 성령을 받았다 하면서 방언도 하고 열심인데, 얼굴이 원래 시커먼 사람이 얼굴이 더 점점 무서워지고 있습니다.
모든 교인을 미워하고 고개는 내려뜨리고 눈깔만 쳐들고 다닙니다.
성령의 얼굴이 아니라 마귀의 얼굴이 그 사람 얼굴에 나타나더니 결국 교회를 떠났습니다.
우리는 태어나던 갓난아이의 그 얼굴을 가지고, 100날 된 아이의 얼굴을 가지고, 안색을 변하지 말고 살아가야 합니다. 늙어서도 童顔(동안)을 가진 사람이 되십시오.
안색은 언제 변하게 됩니까 ?
1. 분노가 있을 때 안색이 변합니다.
창세기 4:5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안색이 변하게 하는 기술은 마귀만이 가지고 있어서 마귀가 역사 할 때 안색이 변합니다.
기쁨이 사라지고, 웃을 일이 안 생기고, 즐거움은 말라 버리고, 화만 날일이 자꾸 생기고, 걱정할 일거리만 생기는 것은 틀림없이 마귀가 역사 하여 당신의 안색을 변하게 하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분노만 치밀어 오릅니다.
나는 지금 한푼이 아쉬워 쩔쩔 매는데 아무개는 일도 안하고 공돈으로 평생 세도 못다 셀 돈. 63빌딩보다 20배나 높이 쌓을 돈을 가졌으니 어찌 화가 안 날수 있겠나요.
중국 도문에 한옥희란 여자가 돈을 2억원을 떼어먹어 화가 나서 죽은 사람, 빛 독촉에 죽은 사람. 많이 죽었습니다.
그런 세상에 왜 화가 안 나게 ?나요? 이것은 마귀가 화나게 만든 것이니 우리가 거기 넘어가지 말고 안색을 변치 말아야 합니다.
미국에 사는 우리 동포는 인종 차별로 화가 치밀고, 한국인은 한국인대로. 중국인은 중국인대로 화가 치미는 것이 지금 세대입니다.
마귀가 있는 곳은 다 똑같습니다. 직장, 학교 어디를 가든지 분노가 치밀어서 안색을 자주 변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분노의 원인을 가인과 아벨의 사건을 통하여 자세히 알려주고, 그 분노의 해결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분노하는 사람은 남이 잘못하여 화가 치밀어 안색이 변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자기의 잘못으로 안색이 변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가인의 제사와 아벨의 제사는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가인은 농사한 것으로 제사를 드렸고 아벨은 양으로 드렸습니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의 차이는 믿음으로 드린 것과 믿음이 아닌 형식과 의식, 외식으로 드린 것의 차이가 있다고 히브리서 11장 4절에 기록됐습니다.
가인도 믿음으로, 곡식을 드렸다면 하나님은 열납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소가 힘겨우면 양으로 드리라 하셨고, 양이 힘겨우면 비둘기로 드리라 하셨고, 비둘기도 힘겨우면 곡식 가루로 제사를 드리라고 하셨는데, 믿음이 아닌 제물이기 때문에 열납하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도 예배를 드릴 때 믿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믿음으로 드린다는 말은 진심으로 전심으로 예배를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순서, 순서 하나를 전심전력하여 찬송, 기도, 말씀, 헌금이 될 때 하나님은 열납하십니다.
전심이 아닌 예배는 절대로 열납하시지 않습니다.
가인은 자기가 믿음으로 드리지 않은 것은 생각지 않고, 오히려 상대방 동생 아벨을 향하여 분노를 내면서 안색을 변한 것입니다.
미움은 살인으로 연결되어서 동생을 쳐서 죽이는 살인을 범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죄의 소원은 네게 있지만 너는 죄를 다스리라”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분노를 품는 그 자체가 죄입니다.
마태복음 5장 22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지금 내게 무슨 분노할 일이 있으면 이 사람은 내가 지금 부족한 것을 나타내고 있는 사람입니다. 내가 죄의 소원을 다스리지 못하고 있는 과정이 분노입니다.
내가 아직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지 못하여 분노가 나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70번씩 7번이라도 용서하라. 이웃을 사랑하라. 위하여 기도하라는 등 하나님의 말씀에 내가 따르지 못 하고 있다는 증거가 안색이 변하는 분노입니다.
로마서 12: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 하라”
우리는 분노의 원인을 남에게서, 아벨에게서 찾지 말고, 내가 나를 다스리지 못하여서 일어났음을 알고, 나를 잘 다스릴 때 분노로 인한 살인이 가인과 같이 이루어 질 수 없고, 안색이 변하지 않고 하나님의 형상의 얼굴로 용서와 평화의 얼굴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2. 두려울 때 안색이 변하여 집니다.
에스겔 27장 35절 “너를 인하여 놀라고 열왕이 심히 두려워하여 얼굴에 근심이 나타나는 도다”
우리 인간이 얼굴이 창백하게 변하여 질 때가 있습니다. 심한 두려움이 있을 때 우리 인간의 얼굴이 희어지고 두려움으로 가득 찬 얼굴로 변합니다.
두려움은 죽는 것을 무서워 할 때 가장 심한 두려움이 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누누이 성도들에게는 담대하라.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한다면서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너희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두려움의 얼굴로 바꾸지 말고, 담대하게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믿음을 지키면서 살아가라 하십니다.
계시록 21장 8절에도 지옥에 가는 8가지 종목 중에 두려워하는 자가 첫 번째입니다.
여기서 두려워한다는 것은 히브리서 2장15절 말씀같이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을 마귀에게 매여 마귀의 종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두려움을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성령을 받으면 성령이 나를 도우심으로 두려움은 없어집니다.
성령 받은 후에는 두려움의 안색이 없어지고, 안색이 꽃이 핍니다.
마귀는 죽인다는 두려움을 인생에게 주어서 병으로 안 죽으려고, 굶어 죽지 않으려고, 고민에 안 빠져 죽으려고, 죽음의 두려움을 피하여 보려고, 마귀에게 순복하고 있지만, 우리는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25절에도 한 달란트 받고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겨 나가 슬피 울며 이를 간 사람의 이야기 중에 “두려워하여” 아무것도 안하다가 그 꼴이 된 것입니다.
이사야 41장 10절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두려움은 믿음이 없을 때 오는 것이요, 안색을 변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골리앗이 나아 와서 싸움을 돋울 때 모두들 그 신장과 용모를 보고 두려워하였으나, 어린 다윗은 골리앗을 안보고, 하나님을 보고,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나아가서 골리앗을 쳐 죽였습니다.
천둥번개 벼락 칠 때 두렵습니까?
바로 왕은 두려워하였으나 모세는 두려워 안하였습니다.
우리 집에 키우던 쩨니라는 개는 천둥치면 두려워서 벌벌 떨면서 나만 졸졸 따라 다닌다.
사업이 안 되고 직장이 없고 수입이 적다고 두려워하지 말 것입니다.
다윗과 같이 담대하게 하나님의 의로운 손으로 나를 도우시고, 나를 붙들어 주심을 믿고, 두려움의 안색을 쫓아 버리십시다. 그리하여 본래의 얼굴을 회복합시다.
하나님의 형상같이 평화와 인자와 사랑과 기쁨의 얼굴을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3. 양심에 어긋날 때 안색이 변합니다.
이사야서 3장 9절 “그들의 안색이 스스로 증거하여 그 죄를 발표하고 숨기지 아니함이 소돔과 같으니 그들의 영혼에 화가 있을찐저 그들이 재앙을 자취하였도다”
사람은 양심에 어긋난 일을 하면은 안색이 변합니다.
그리고 안색이 스스로 자기의 죄를 증거 합니다.
거짓말을 할 때 양심의 고통이 오고, 갈등이 오면 그 사실이 바로 안색으로 이어 집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마귀가 양심에 화인을 찍어서 양심에 털란 사람들이 있어서, 안색이 안 변하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 양심의 고통 때에는 안색이 변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한 양심 착한 양심에 가책되는 일과 죄를 저지르지 말아서 안색을 변하지 말고 의롭게 담대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안색이 변하여 양심의 증거를 받는 사람은 그 영혼에 화를 받게 되고, 재앙을 자취하고 하나님의 진노의 형벌을 받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양심 때문에 안색이 변한 일을 하지 말고 의롭고 선하고 착하게 살아가십시다.
4. 부끄러울 때 안색이 변합니다.
부끄럽다는 것은 잘못을 저질러서 남을 대할 낫이 없을 때,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겠다는 마음이 있을 때 안색이 빨갛게 변합니다.
대머리의 얼굴은 어디까지입니까? 라는 질문의 답이 세수할 때 손가는데 까지. 부끄러울 때 빨개지는데 까지가 대머리의 얼굴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의 부끄러움은 잠시 순간적이지만, 천국에서의 부끄러움은 영원한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되 부끄러운 구원은 받지 말고 영화로운 구원을 받읍시다.
5. 질병이 몸에 있을 때 안색이 변합니다.
약국을 할 때 날마다 수십 명씩 환자만 보고 있으니, 얼굴만 보아도 무슨 병색인지 알 수 있습니다.
병으로 인하여 얼굴의 안색이 변한 것을 병색이라고 합니다.
우리 전문가가 아닌 사람도 저 사람은 병색이 짖다 하면서 안색을 보고 질병 여하를 알고 있듯이, 전문가는 더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진찰 법에는
청진-- 소리를 들어서 아는 것. 청진기가 지금도 있다.
촉진 -- 만져 보아서.
시진-- 얼굴을 보아서. 병색을 보아서,
문진 -_물어 보아서.
얼굴이 노라면 황달이고, 시꺼멓게 됐으면 간이 나쁘고. 마르면 -암이 있다.
우리 주님은 여러분이 병으로 인하여 안색이 변하는 것을 절대로 기뻐하지 않습니다.
마가복음 5장 34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 찌어다”
우리의 주어진 인생의 수한 동안 건강하게 살아갑시다.
병으로 안색을 변하지 말고 살아갑시다.
질병은 이렇게 구분합니다.
인간의 실수로 오는 것 -- 20 %. 사고나 감기나 소화 불량 등.
마귀가 갖다 주는 병 --- 60% 회개함으로.
생리적인 병 - - -- 10% 과로하면 몸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10% 영광 돌리면 치료됨
기공하여 건강 유지하지 말라. 자칫하면 마귀의 건강법에 속는다.
** (김 양덕 목사. 의란 기공 여인 돌대가리. 대결)
이상구 박사의 NEW START PROGRAM도 웃고 채식하면 성인병 고쳐진다.
엔돌핀 분비 많이 시키고, 아드레날린을 분비 안 시키면 건강해진다는 법칙을 응용한 것입니다.
즉 안색을 하나님 형상으로 돌려놓으면 건강하여 집니다.
우리는 안색을 병색으로 변치 말게끔 늘 회개하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조심하면 절대로 안색이 병색으로 변하지 않습니다.
6. 수색이 있을 때 안색이 변합니다.
느혜미야 2장 2절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색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마음에 근심이 있으면 얼굴의 안색이 변합니다. 이것을 수색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시고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왜 마음에 근심이 될 일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수색은 없어집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사무엘을 잉태하기 전에는 수색으로 가득하게 채우고 살았습니다.
성전에서 기도하고 엘리 제사장의 말을 듣고서는 다시 수색이 없이 본 얼굴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을 낳고, 사무엘을 약속대로 성전에서 살게 하고, 자기는 하나님께 감사로 살아 갈 때 3남2녀를 더 주신 것을 사무엘 상서에서 보게 됩니다.
우리가 근심하고 염려하여도 키를 한 치나 자라게 할 수 없고, 머리카락도 내 맘대로 나게 못하는 것인데 미련하게 어찌 수색만 가질 수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모든 것이 지금 잘 안된 것도, 장차 잘될 줄로 알고, 감사하면서 본 얼굴 찾고 살아가십시다.
로마서 8장 28절 “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 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말씀으로 수색을 물리치시고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기쁘고 평화가 넘치는 본 얼굴을 찾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정리 :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원래의 얼굴, 본 얼굴로 돌아가십시다.
하나님이 주신 어린아이의 얼굴로 돌아갑시다.
평화, 기쁨, 순진, 사랑, 소망의 얼굴로 돌아갑시다.
마귀는 얼굴을 자기같이 사납게 변화시키려고 노력합니다.
흉악한 얼굴로, 공포의 얼굴로, 병색의 얼굴로, 분노의 얼굴로, 시기의 얼굴로, 교만의 얼굴로, 수심의 얼굴로 바꾸어 가고 있지만, 사랑하는 성도님들은 이런 얼굴을 가지고는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어린아이 같은 얼굴로 환원되어야 천국에 가게 됩니다.
변한 얼굴은 본래의 하나님이 주신 얼굴로 바꾸고, 감사와 사랑과 기쁨으로 평화로 살아가십시다.
이 세상은 안색이 변할 일이 너무 많지만, 안색을 변하지 말고 살아서, 마귀를 승리하는 우리가 되어야 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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