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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의 전기와 팡세에 대하여

빛에스더 2008. 7. 23. 13:27

 

 

 

파스칼

 


   천재는 단명하다든지, 천재는 요절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모든 천재가 단명하거나 요절한 것은 아니다.  괴테는 천재 중의 천재였으나 오래 살았고, 영국의 J. S. 밀도 천재였으나 오래 활동했다. 비범한 천재로 평가받았던 라이프니츠도 70살까지 계속 활동했다.  그러나 데카르트, 스피노자. 말브랑슈,파스칼 등은 일찍 세상을 떠났다.  이렇게 본다면 철학계에는 두 종류의 천분을 지닌 철학자들이 있었던 것 같다. 일찍 학문적 업적을 끝낸 사람과 늦도록 학문적 발전을 지속시켜나간 사람이다. 독일의 철학자 셸링은 30사에 세상을 떠났다고 해도 철학적 업적에는 별로 지장이 없었을 것이다.  대개의 경우 천재는 지능이 높은 사람을 말한다. 그들은 일찍 학문과 사상을 개척해나간다. 그 대신 장년기 후반이나 노년기에는 별로 발전적 성과를 남기지 못한다. 그러나 지능은 일찍 높게 나타나지 않았으나 계속해서 학문적 연구에 정진하는 대기만성파가 있다. 그런 사람은 같은 천분을 지니고 있었어도 천재라는 명칭에는 덜 해당되는 것 같다. 음악계에서는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경우가 그러했을 것 같다. 이상스럽게도 영국의 철학자들은 대개가 늦도록 철학을 발전시켜나간 편이다. 그러나 독일, 프랑스의 철학자들은 일찍 철학적 천분을 발휘한 편이다. 물론 칸트와 헤겔 같은 사람은 예외였고, 처음부터 끝까지 천재적 창조력을 발휘한 라이프니츠 같은 이가 없는 것은 아니...  우리가 이런 덜 필요한 얘기를 하는 것은 17,8세기까지의 철학자들의 기질을 비교해보자는 것일 뿐이다. 19세기 이후의 대분분의 철학자들은 천재형보다는 노력형이며 장년기 이후에 학문적 업적을 남긴 것이 보통이었다. 철학은 역시 문제의식과 연결되며, 큰 그릇이 많은 물건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이 철학의 학문적 성격일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이야기를 삽입시킨 것은 데카르트 연구에 뜻을 가졌다가 개인의 체험과 신념 때문에 다른 방향의 업적을 남겨준 블레즈파스칼(B. Pascal, 1623--1662)을 소개하는 데 길잡이가 되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파스칼은 전통적 흐름을 탄 철학자는 아니었다. 그 당시의 대표적인 인물의 하나였고 그의 천재성은 데카르트를 앞지르고 있었을 정도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수학, 기하학을 비롯한 자연과학을 공부했고, 기계공학적 분야에서 이론과학의 영역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철학적 조예도 깊었던 편이었다.  파스칼이 이런 학문들을 전개켜가는 동안에 기독교 신앙에 관한 신비로운 체험을 하게 되고, 이성적 합리주의가 팽배한 시대에 신의 은총의 사실과 질서를 변증하는 신앙적 책임을 통감하게 되었다. 그 목적을 위해 남겨놓았던 메모들이 사후에 정리되어 책자가 되었고, 지금은 세계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 "팡세"로 남게 된 것이다. 그가 남겨놓은 메모들은 후일에 그가 한 권의 대표적인 저서로 완성시키고 싶었던 기초자료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허약한 체질로 일찍 병에 시달리게 되었고, 39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저작화는 실현되지 못하고 말았다.  파스칼이 살아 있는 동안은 그 "팡세"가 알려지지도 못했다. 사후에 그의 측근들이 그 메모들을 모아 출간했을 때도 사상계의 관심을 모은 것은 아니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계몽철학자 볼테르는 아예 평가의 대상으로 삼지도 않았다. 그러나 세월이 갈수록 "팡세"는 넓은 계층의 독자를 확보해나갔고, 프랑스를 넘어 세계적인 걸작으로 지금도 읽히고 있다. 물론 기독교계가 그 배경을 만들기도 했다. 아우구스티누스 이후에 가장 영향력이 큰 저작으로 손꼽히고 있을 정도다. 지금은 그 당시의 어떤 철학자의 사상과 학문보다도 광범위한 의의를 사상계에 남겨주고 있다. 오히려 이를 낮게평가했던 볼테르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우리가 문제삼고 싶은 것은 그의 기독교적 사상이나 종교철학적 의미가 아니다. 그가 남겨준 철학적 사색과 업적이 컸다는 점인 것이다. 그리고 이성적인 합리주의가 가장 절정에 이르고 있을 때 이러한 특이한 사상가가 있었다는 것은 가벼이 여겨서는 안될 것이다.  그런 점에 있어서느 아우그스티누스의 철학적 신학이 철학사에 큰 자취를 남겨주었던 것과 19세기에 S. 키에르케고르의 사상이 철학계와 신학계에 미친 영향과 비슷한 점이 있었을 것이다. 어떤 이는 파스칼을, 17세기를 대표하는 가장 훌륭한 지성의 소유자였고 가장 광범위하면서도 유구한 인간적 과제를 풀이해준 공로자라고 평하고 있다. 심리학자 아니었음에도 오늘과 같이 인간학이 개척되지 않은 시대에 너무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겨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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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의 걸어온 길 ......
  

1623년

6월 19일, 프랑스의 오베르뉴 주 클레르몽에서, 세무관리인 아버지 에티엔느 파스칼과 어머니 앙트와네트 베공 사에에서 태어남

1625년  (2 세)

누이동생 자크린느가 출생, 이 밖에도 파스칼에게는 누나 질베르트가 있었음.

1626년  (3 세)

어머니 사망.

1631년  (8 세)

아버지가 세무관리직을 사임하고 파리로 이주.

1635년 (12세)

아카데미 학자들과 대화를 시작.

1639년 (16세)

<원추곡선시론(圓錐曲線試論)> 발표.

1645년 (22세)

3년간의 연구 끝에 계산기를 제작함.

1646년 (23세)

새로이 종교에 눈을 떠 이른바 '제 1의 회심'에 이름.

1647년 (24세)

데카르트의 방문을 받음.  논문 <진공에 관한 새로운 실험>을 발표.

1648년 (25세)

<액체 평형에 관한 실험담> 발표.

1651년 (28세)

아버지 사망.

1652년 (29세)

누이 동생 자크린느가 포르 르와얄 수도원에 들어감.

1653년 (30세)

<유체 균형론>(1663년 출판), <기중론(氣重論)>(1665년에 출판) 두편의 논문 집필.

1654년 (31세)

<산수 삼각론>(1665년에 출판) 집필.  11월 23일 밤 10시 30분과 12시 30분에 성령의 감화를 받음.  이 경험을 기록한 <비망록>을 양피지에 써서 죽을 때까지 옷 속에 꿰매어 간직함.  이것을 파스칼의 '제 2의 회심'이라고 함.

1656년 (33세)

<프로방시알>의 <제서간(諸書簡)> 발표.

1657년 (34세)

<은총론>(1779년 출판) 및 <기하학의 원리> 집필.  <기독교의 변증론> 구상.

1658년 (35세)

<사이클로이드에 관한 회장(回章)> 발표.

1659년 (36세)

건강이 약화되어 휴양.

1660년 (37세)

<기독교의 변증론>, <병의 선용을 기원하는 기도> 및 귀족의 신분에 관한 3개의 논문 집필.

1662년 (39세)

8월 19일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