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ivsFG4ghzgc 평화나무 권지연, 이동욱 종암서 접수
보훈처는 청사 5층 회의실 명칭을 '평화실'에서 '밴플리트홀'로 변경한다고 19일 밝혔습니다.
박 처장은 이날 오후 밴플리트홀에서 열리는 명칭 변경 행사에서 밴플리트 장군 부자의 모습이 담긴 액자를
박민식 보훈처장은 "밴플리트 장군의 이름을 딴 회의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자유 민주주의를 위해
또한,밴플리트 장군은 1951년 4월 11일 6·25전쟁에 미 8군사령관으로 참전해 중공군의 공세를 꺾고
밴플리트 장군은 한국 도착 직후 "승산이 없는 전쟁이니 동경으로 철수해야 한다"는 참모의 건의를 듣고,
"나는 승리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나와 함께하기 싫다면 당장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해 단번에 현장의
한국 육군사관학교 설립에도 기여한 밴플리트 장군은 '한국군의 아버지'로도 불렸으며. 전역 후에도
https://youtu.be/dDKa7zeUWCU 이동욱을 찾습니다 ㅣ 수달아 넌 알지? ㅣ 220919
▼ 이승만의 마지막 기도
"이제 저의 천명이 다하여 감에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셨던 사명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바라옵건데 우리 민족의 앞날에
주님의 은총과 축복이 함께 하시옵소서...
우리 민족이 굳세게 서서 국방에서나 경제에서나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 이승만의 유언
"잃었던 나라의 독립을 다시 찾는 일이 얼마나어렵고 힘들었는지 우리 국민은 알아야 하며 불행했던
과거사를 거울삼아 다시는 어떤 종류의 것이든 노예의 멍에를 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우리 민족에게 주는 유언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게 서서 다시는 종의 명에를
메지 말라(갈라다이아서5:1)"
1965년 7월 23일 이승만 박사는 꿈에도 잊지 못했던
그의 조국 자신이 평생토록 사랑하고 또 사랑했던 동포 곁으로
마침내 돌아왔다.
이승만 대통령 추모인파 시청광장 1965년 7월 27일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뼈를 한국 땅에 묻히게 해달라던 남편과의 마지막 약속을 아내 프란체스카는 지킬 수 없었다.
건국대통령이며 대한민국을 살린 이승만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기 위해 거리로 뛰쳐
나온 시심들이 구름때 같이 모인 사진
유해가 운구 되고 이화장에 빈소가 마련되자 전국에서 추모객들이 몰려와 그 인파를 감당하지 못한 이화장
입구 길목의 답이 무너졌다.
병상에서도 "남북통일이 이뤄지기 전에는 눈을 감울 수가 없어" 하던 건국 대통령 이승만 그를 애도하는 추모인의 물결이 이화장 담장을 무너뜨리듯 조국의 남북을 가로막는 휴전선의 담장도 자유를 갈망하는 국민의 힘 앞에 무너져 자유민주통일의 소원이 어서 이루어지기를 하늘나라에서 기다릴 것이다.
'시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DJ부터 이재명까지...더불어당의 '북핵 사기' 릴레이 (0) | 2022.10.13 |
---|---|
mbc(악의에 찬 편파 조작보도)는 전라도 주사파 인민 방송 (0) | 2022.09.27 |
코로나 백신 해독 집중강좌 및 코로나 백신 해독을 위한 범국민 운동본부 발대식: 9월19일 (0) | 2022.09.13 |
놈들의 이력.. 이런 자들이 나라를 운영했으니 이 꼬라지가 나지. ㄷㄷㄷ (0) | 2022.09.13 |
문재인의 한달 연금 1,390만원 ㄷㄷㄷㄷㄷ (0) | 2022.09.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