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큐티묵상

똥같은 [욥기서20:1-29]

빛에스더 2014. 8. 3. 14:33

 

 

 

 

 

자기의 똥처럼 영원히 망할 것이라 그를 본 자가 이르기를 그가 어디 있느냐 하리라 
 

 소발.

소의 발..?.. 같은 사람이

수많은 그럴 듯한 이야기를 늘어 놓는다.

그것.. 상황에 떼어놓고 하는 말이라 생각하면

상당히 괜찮은 이야기들이다.

도덕적이고 그 당시의 시대상황에 맞추어 그럴듯하고

표현력도 상당하다.

 

그러나, 그게

친구

고난 받는 자

극도의 심적 혼란을 겪을 자.. 에게 할 이야기던가?

 

거기에 그의 논지는 불이 붙어서

제동이 걸리지 않는 고장난 차처럼 마구 나간다.

'똥'

성경에서 똥이야기를 직접적으로 한 것이

다섯군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소의 발 입에서

그 어려운 똥 이야기를

욥에게 한다.

 

이거.. 아마 옆에서 보면

이런 소리가 내 입에서 튀었을 것이다. .

 

" 이 똥같은....!@@#$%^^%$^ㅉ^%& ~~!!! "

 

그런데 이게 비단 그 뿐인가?

 

사람들.

남 이야기 하는 것 좋아한다 .

남의 암보다 내 곳불이 더 문제다.

세상에서 가장 볼 구경거리가 '남의집 불구경'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세상에서 제일 장기 잘두는 사람이 '훈수'두는 사람이다.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다. ..

.......ㅠ.ㅠ;;

 

아닐 건가?

정말 백프로 아니라고 마음 속 깊이 들여다 보고 확언할 사람

세상에 얼마나 될까?

소위 배움이 , 가정교육이 그들의 외부로 표출되거나

그의 의식 표면에 그런 심사가 잡히는 것을 막아서

천성적으로 착하게 태어나서 덜 느끼는 것 뿐...

스스로 생각해도 '교양' 있거나

도덕적이라는 사람들의 깊은 곳에서도

그런 마음의 움직임은 있다 .

 

인간은 그런 '원죄적 '존재다.

 

며칠전 밥먹어 가면서

소아과 의사 샘이 한 이야기가 있다 .

'아이들은 천성적으로 악하게 태어나는 것 같아요...

 얼마되지 않은 아이들이 본성적으로 엄마가 옆에 있을 때와 없을 때

 의사 앞에서의 태도가 달라요.. '

 

기독교의 기본은 성악설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그 본질적 죄악 때문에

말라기서 이후

수백년의 고심 후에

예수 그리스도,

당신의 아들을 이 땅에 '십자가 희생제물'로 보내실 결단을 할  수 밖에 없으셨다.

 

오직 예수.

그 분이 아니고는

이 똥같은 세상,

이 똥같은 인간의 영혼

이 똥같은 주하인의 깊은 더러움을 치울 수가 없기에 그러셨다.

 

 아침에 출근하는 데

자전거를 타고 나왔다 .

한참을 지나다 보면 눈에 걸리는 사람들이 종종 많다.ㅜ.ㅜ;;

횡단보도를 가로막고 봉고가 서 있는데

통과하려는데 후진으로 조금씩 움직인다 .

짜증 나려 한다.

 

 수영장에 가면 탈의실에

바닥에 물이 흥건히도 고여있는 경우가 많다 .

물기를 닦지도 않고 그대로..

바로 옆에 휴지통 있는데 물을 먹고 종이컵을 그냥 바닦에..

 

 아.. 어쩌면 저렇게 ..

어쩌면 저리도 미련하게..

어쩌면 저리 비도덕적으로..

 

다 똥같이 .. 느껴지려 한다.

인간세상에 과연 '희망'이 있을까 싶기도 하여진다.

 

그러나 바퀴를 구르고 출근하며

그러한 별것 아닌 자의

대수롭지 않은 일에 대하여

'화'까지 올라오려함이 죄스럽다 .

마음이 무거워지려한다.

얼른 '회개'하는 화살 기도를 하였다 .

마음으로..

그러함에도 자주 되풀이 되는 이 무거운 '죄'..

 이렇듯 습관이 되어감은

내 '소발' 같은 습성은 혹.. 아닐까 싶다.

가만히 내 속을 들여다 보았다.

'과거'의 내 오래된 똥같은 습성

 (^^;; 주제가 똥이라서 똥 자를 붙혔을 뿐,, 아침에는 그단어는 생각지 않았다.ㅎ) 이

자꾸만 내 지금의 뇌리를 스치기 때문이 아니던가?

 

아침에 묵상은 어렵다.

소발의 소발 같은 언행 비일치,

그 '공감'없고 사랑없는 '공의'적 발언,,

그 상황에 맞지 않는 똥같은 미련함.. 을 가지고 어떻게 묵상을 진행할까?

 

하지만... 아니었다.

똥의 더러움은 세상에만 있지 않았다.

매일 매일 내 속에서도 그리한다.

난.. 타인의 아픔을 정말 긍휼히 여기던가?

가까운자들의 어찌할 수 없는 '미련함'을 가련히 여기기 시작한게 얼마나 되던가?

 

그렇다면 그 똥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좋은 것을 먹고 나쁜 것으로 배출되는 게 똥이 아닌가?
왜 나는 좋은 생각으로 내 마음에 돌리지 못하는가?

오래된 과거의 상처를

그냥 세상에 반성없이 투영하고

그 투영된 생각의 더러움을 '입'으로 '눈'으로 '생각'으로 표출해 내기에 그렇다

 

세상은 똥천지다.

정말 점점 더 심해져 간다.

온통 매스컴은 더러운 유머, 더러운 유혹, 더러운 말들로 넘쳐간다.

그러면서 엽기라는 단어 하나로 '뭉그러 뜨리더니'

' 내 기분이 진리'라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가치를 주입시켜

세상이 온통 혐오스러운 일들이 겉으로 드러나도 되는 시대가 되었다 .

여기저기 다 똥이다 .

그거.. 그래도 수세식 변기 안에서 내려져

잘 모아서 하수처리장에서 조용히 되면

그래도 덜 더러울 것을.. ...

 

나.

나도 똥같은 사람이 맞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자꾸만 깨끗해져 가는 사람이고

오직 성령의 도우심으로

결국 깨끗해질 사람이지만...

 

이제 오늘 내 안의 더러운 똥을 하나 발견했다 .

과거의 똥들..

그게 내 오늘의 시선을 흐린다.

내 영혼을 냄새나게 한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을 무기삼아

성령의 매일 임재하심으로

내 영혼을 씻어야 한다 .

 

 

 

감사하신 내 주님.

똥이란 더러운 단어를 통해서

또 마음을 들여다 보고 회개할 거리를 주신

살아계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인케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정말 날이갈수록 더러워져 가는 세상입니다.

얼른 주님 부르시면

발걸음을 떼어 주님 계신 곳에 가고픈 마음 뿐입니다.

 

그러나, 내 안의 더러운 것들이

아직 냄샐 풍기고 있었음을

오늘의 똥이란 단어를 통하여 다시한번 확인하였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아직 저를 부르시지 않으신 듯합니다.

이 땅에서 더 ..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샤워하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매일 때 닦어내고

하나님의 곁으로 다가오길 기대하시는

그 기대를 눈치챘습니다.

 

주여.

타인에게

소발 같은 무지한 공의를 드러내지 않도록 하시고

내 안에 조금 더 여유로운

사랑으로 긍휼로 채우시고

타인을 향해 더러운 '악의'를 내보내시어

선한 소리 선한 눈빛 선한 생각으로

저를 채우소서.

 

똥같은 공의보다

옳바른 지혜의 공의

사랑으로 바탕이 된 공의만을 누리는

하나님의 지혜로 절 채우소서.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도 기도합니다.

아멘

 

[ 출처 :' 발칙한 큐티 ' 주하인 '님 ]

 

 

 

 

G. F. Handel / Opera - 'Lascia chio piang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