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 (5)
본문 : 창세기 1:9-13, 24-25
제목 : 땅의 창조
말씀 : 하용조 목사님
창세기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느니라”로 시작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믿지 않으면 창세기는 열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다는 사실을 믿고 그분을 경배하고 찬양하기 시작하면 창세기는 문을 엽니다. 그 안에 들어가면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창조의 놀라운 신비와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히브리서 11장 3절에서는 천지창조에 대해서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라고 말합니다. 천지창조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어졌습니다. 이것은 믿음으로만 알 수 있습니다.
첫째 날 하나님께서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에는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라는 말도 적당한 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에게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곧 능력입니다.
둘째 날 하나님은 궁창을 만드시고 셋째 날 하나님은 땅을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지난주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늘을 만드셨나를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어떻게 땅을 만드셨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땅은 물에서 만들어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장 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물에서 하늘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지구에는 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누라’고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물이 두 갈래로 나누어졌습니다. 하나의 물은 하늘 위로 올라갔고 하나의 물은 땅으로 내려갔습니다. 그 사이의 공간을 궁창이라고 합니다. 인간이 살 수 있는 대기권을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9절은 하나님께서 땅을 만든 현장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창세기 1:9]
땅으로 내려온 물은 지구를 덮고 있었습니다. 최초의 지구는 물이 덮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창세기 1장 2절에서 하나님의 신이 수면을 운행하셨다는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물에게 하나님이 명령합니다. “물은 한 곳으로 모여라” 이 물이 한 곳으로 모인 곳이 바다요, 물이 없어지고 드러난 곳이 땅입니다. 흐르던 물이 어떻게 한 곳으로 모여 바다가 되었을까요?
물의 속성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게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한 곳으로 이동을 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할 수 없어도 하나님은 할 수 있습니다. 말씀으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와 유사한 사건을 구약의 다른 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흐르는 물 한곳 모으고 홍해 가르시는 하나님
모세를 따라 애굽을 나온 수 십만의 이스라엘 백성이 부딪힌 것은 바로 홍해였습니다. 마음이 변한 바로가 군대를 보냈고, 바로의 군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공격하기 위해 뒤쫓아오고 있었습니다. 뒤에는 바로의 군대, 앞에는 홍해가 펼쳐져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디로 가야할 지 몰랐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홍해를 육지같이 가르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홍해가 갈라졌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바다를 육지같이 건널 수 있었습니다.
이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홍해가 갈라졌을 때 무엇이 생겼을까요? 물 벽이 생겼을 것입니다. 물 벽이 생겼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과학으로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다 사이에 길이 생겼습니다. 만약에 물 벽이 생기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물을 말려 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을 말린 후에 건넌 것이 아니라 물이 갈라진 곳을 지나갔습니다.
분명히 물 벽이 생겼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다를 육지같이 건넜고 그 뒤를 애굽군대가 쫓아 왔을 때 다시 물을 흩으셔서 그들은 물에 빠져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물을 한 곳으로 모이라고 했더니 한 곳으로 모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현장에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위대하고 놀랍습니까? 우리는 작은 필름을 보고도 감동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의 세계는 참으로 아름답고 놀랍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 [창세기 1:10]
물은 땅이 깊이 파인 곳에 고였습니다. 그래서 드러난 곳을 땅이라고 부르고 물이 모인 곳을 바다라고 불렀습니다. 땅이 물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베드로 사도가 증언합니다.
베드로 후서 3장 4~5절을 보십시오.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성경을 보면 재미있는 곳이 많이 있습니다. 땅과 바다를 만드시고 하나님은 이것의 경계를 어떻게 만드셨을까요? 예레미야 5장 22절을 보면 땅과 바다의 경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를 두려워 아니하느냐 내 앞에서 떨지 아니하겠느냐 내가 모래를 두어 바다의 계한을 삼되 그것으로 영원한 계한을 삼아 지나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파도가 흉용 하나 그것을 이기지 못하며 뛰노나 그것을 넘지 못하느니라”
하나님은 육지와 바다를 모래로 경계선을 삼으셨습니다. 욥기 38장에서부터 41장까지 읽어보면 하나님의 창조의 오묘한 진리에 대해서 더욱 자세히 알게 될 것입니다.”
창조의 원리- ‘하나님이 가라사대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하늘을 만드시거나 빛을 만드실 때 중요한 원리가 있었는데 ‘하나님이 가라사대 그대로 되니라’라는 것입니다.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말씀은 곧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여러분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이 말씀을 듣고 믿고 순종하면 창조의 능력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오늘 여러분에게 나타날 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오신 ‘말씀’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었고 누구든지 그 말씀을 믿는 자들에게는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주여 말씀만 하옵소서 내 종이 낫겠나이다”라고 말했던 백부장이나 “주여 말씀대로 이루어지리다”라고 말한 마리아처럼 저는 여러분도 말씀에 순종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의심하지 않고 믿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우리의 영과 혼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천지가 창조되었고 말씀으로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이 이 말씀을 그대로 믿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는 자가 되지 마시고 그 말씀을 듣고 믿고 순종하고 행동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참된 축복을 받는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린아이처럼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두 번째 창조하실 때 반복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가 만드신 것을 보고 좋아하셨습니다.
하늘을 보고 좋아하셨고 땅을 보시고 좋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좋아하십니다. ‘난 네가 좋아, 참 좋아’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서로 좋아하지 않으면서 빈말로만 좋아한다고 해도 좋은데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그 대상이 바로 인간입니다.
오늘 우리는 천지창조 중 셋째 날의 창조를 공부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우리는 한 단어를 발견합니다. 그것은 ‘나눈다’입니다. 하나님이 첫째 날 빛을 만드시고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밤과 낮을 만들었고 둘째 날 하나님은 궁창을 만드시고 물과 물을 나누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셋째 날 하나님은 땅과 바다를 나누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눔으로 창조하신 하나님,
하나님과 세상을 구별하십시오
나눈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하나님은 섞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세상과 짝하고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구분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과 돈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를 택하십시오.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할 수 없습니다. 천국과 지옥은 공존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매일 천국과 지옥을 경험한다고 말하지만 그 사람은 매일 지옥만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과 짝하지 않습니다. 성도들은 세상과 짝하지 않습니다.
셋째 날 하나님이 땅을 창조하실 때 풀과 씨 맺는 채소와 열매를 맺는 나무를 만드셨습니다. 11절과 1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세기 1:11, 12]
땅을 만드실 때 땅에서 자라나는 풀과 채소들과 나무를 만드셨는데 하나님은 드디어 생명체인 식물을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나 동물은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그 동물은 여섯째 날 만드십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신비스럽고 재미있고 좋으신 분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창조하신 것을 보면 감탄, 감탄할 것뿐입니다. 하나님이 생명체를 만드는 것도 특이합니다. 먼저 하나님은 빛을 만드시고 다음에 하늘을 만들어 대기권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은 땅을 만들고 물을 나눕니다. 인간이 생명을 누릴 수 있는 기본적인 환경을 모두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풀과 채소와 과실을 만들 때에도 재미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풀은 풀이요 채소는 채소요, 나무는 나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혼돈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풀이 자라서 나무가 되게 한 것이 아니라 나무는 나무대로 완성품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만드실 때 아담의 씨를 주어서 자라게 한 것이 아닙니다. 발전하고 진화하고 종을 만들어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고기는 물고기로, 하늘에 나는 새는 새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원숭이와 사람을 혼돈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창조입니다.
우리가 또 하나 발견하는 것은 바로 ‘종류대로’라는 말입니다. 채소를 종류대로, 나무를 종류대로, 새를 종류대로, 육축을 종류대로 하나님은 그 종류대로 완성품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섞거나 발전시키거나 진화시키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셋째 날의 창조였습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요, 조화의 하나님이요, 중용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발견하게 됩니다. 땅을 만드시고 그곳에 여러 가지 동물이 먹을 수 있는 식물을 만드시고 여섯째 날 드디어 동물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24절과 25절에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육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세기 1:24,25]
하나님은 마지막 창조의 끝단계로 땅의 짐승들을 만들기 시작하셨습니다. 24절과 25절을 보니까 ‘그 종류대로’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종을 바꾸지 않으셨습니다. 하등동물을 고등동물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하등동물은 처음부터 하등동물로 고등동물은 처음부터 고등동물로 만드신 것입니다.
변하고 진화하고 발전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모습 그대로 태초에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들에 핀 꽃들을 보십시오. 거기에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웅장함과 신비로움과 상상할 수 없는 창의력이 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창조의 능력이며 아름다운 신비이며 기막힌
조화입니까?
우리는 이 하나님의 위대하신 창조의 모습들을 고린도전서 15장 38절 ~41절에서 더 놀라운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뜻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고린도전서 15:38-41]
참으로 귀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형체를 주시고 종자를 주셨습니다. 모두 육체이지만 모두 같은 육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육체가 다르고 새의 육체가 다르고 짐승의 육체가 다르고 물고기의 육체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면 모두 고깃덩어리이지만 하나님이 만드실 때는 다르다고 했습니다. 육체는 모두 같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을 따라
하나님과 교제하는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섞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인간이 짐승도 되고 짐승이 인간도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유물사관입니다. 인간을 하나의 경제적 동물로 밖에 보지 않습니다. 인간을 하나의 물질로 봅니다. 그래서 사람을 물질로 평가합니다. 내가 필요하면 얼마든지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갈등 없이 인간을 죽입니다.
인간과 동물은 섞여질 수 있다는 착상에서 인류비극 시작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들이 자연을 파괴하고 짐승처럼 삽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종을 바꾸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원숭이가 인간이 될 수 있고 인간이 짐승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고, 인간은 하나의 육체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을 쾌락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인간을 유익의 도구, 경제적 활동의 도구로 생각합니다.
인간은 쾌락의 동물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사람은 동물처럼 살기 시작했습니다. 인간 안에 짐승이 있습니다. 얼마나 무서운 죄악을 가져오는 것입니까?
이것이 인간과 동물은 섞여질 수 있다는 발상에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분명히 각기 종류대로 만들어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아 하나님과 교제하는, 죽음이 없는 존재로 지음 받았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그 인간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되기를 원합니다. 창조의 모습을 회복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창조해주신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예수 안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고 그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누구든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구원을 얻고 그를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아들에게는 생명이 있습니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겠다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늘에는 해의 영광이 있고 달의 영광이 있고 수 천억 개의 별들의 영광이 따로 있습니다. 얼마나 창조의 신비가 놀랍습니까? 우리는 동물과 같은 육체의 속성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동물이 아닙니다. 땅의 형체가 아닙니다. 우리의 본체는 하늘에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할 특권이 있습니다.
사람답게 사십시오. 짐승처럼 살지 마십시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개같이 사는지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뱀처럼 천하고 추하게 삽니다.
우리도 모르게 우리를 속이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띠’입니다. 개띠니, 호랑이띠니하는 것입니다. 절이나 산에 가 보십시오. 모두 짐승의 형상을 그려놓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이 모두 짐승으로 덮여 있습니다.
윤회설이 가짜인 이유는 사람이 다시 짐승으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짐승이 되었다가 또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깨끗한 물과 더러운 물이 합쳐지면 더러워집니다. 지옥과 천국이 합쳐지면 지옥이 됩니다. 짐승과 인간이 합쳐지면 짐승이 됩니다. 그것은 인간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자식을 결혼시킬 때 사주보고, 띠를 봅니다. 그것은 ‘나는 짐승이요’하는 소리입니다.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주셨습니다.
인간은 동물이 아닙니다. 원숭이는 원숭이고 사람은 사람입니다. 바꾸어지지 않습니다. 인간만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축복된 존재로 만들어 졌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창조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동물과 식물과 해와 달과 별과 우주의 모든 것을 다스리고 통치하라고 인간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인간은 이렇게 귀한 존재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 삼아주셨습니다. 짐승처럼 살지 마십시오. 인간답게 사십시오. 동물적인 여러분의 본능을 예수의 이름으로 꺾어버리십시오.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십시오.
이것이 창조의 축복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 안에 새롭게 회복되게 하여 주시사 우리 안에 온전한 아들의 형상이 이루어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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