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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命
사도행전 17장 24절 - 27절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生命이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우리가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것이라고 똑떨어지게 말하기가 곤란한 것이 이러한
질문입니다.
한문을 그대로 말하면 날生, 목숨命 이니 산목숨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영어로는 Life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생물의 존립, 유지의 원동력이라고 辭典에서는 말하고 있지만 이것도 완전한 설명은 아닌 것입니다.
生命의 定意
1. 생명은 실제로 존재하나 보이지 않는 것이다.
사람이나 짐승이 죽을 때에 임종을 지켜보면, 생명이 떠나가서 죽는 것을 보지만, 실제로는 죽기 전이나 죽은 후이나 별 다름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집에 강아지가 앓다가 죽는 것을 유심히 지켜본 일이 있습니다.
죽기 전에 큰 비명을 한번 지르고는 움직임이 그치는 것을 보고 죽었구나 하는 생각만 들뿐, 죽기 전이나 죽은 후에나 아무런 다름이 없습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체온이 식어지고 경직이 오고, 썩고, 냄새가 나는 것은 한참 후의 일이지만, 죽는 순간에는
아무런 다름을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은 분명히 계시지만 눈에는 안 보이는 것과 같이 생명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눈에는 안 보이는 것입니다.
2. 생명은 하나님께서만 창조하시고 하나님께로서만 주어집니다.
오늘날 현대 과학이 발달하여 문명, 문화가 발달하고 있어도, 조그마한 생명체를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파리 한 마리도 만들지 못하고 있는 현대 과학입니다.
동물의 생명은 물론이고, 식물의 생명도 만들지 못하여 풀 한 포기도 인공으로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생명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주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3. 오직 하나님만이 생명의 원천이요 생사 관리를 하십니다.
마태복음 6장 28절 - 39절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4. 생명에 관계되는 축복은 오직 하나님께서만 주십니다.
모든 생명체는 하나님과 관계가 잘 될 때에 장수하고 잘되는 복을 받게 됩니다.
더구나 만물의 영장이요, 다른 생명을 다스리라는 위임 권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 되면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생물들까지 困難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합 왕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귀신을 섬길 때에 3년 동안이나 비가 오지 않음으로 사람도 곤란을
겪었지만 다른 생물들도 물이 없어 심한 곤란을 격은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우상 선지자들과 대결에서 승리를 하고, 우상 선지자들을 잡아죽인 후에 3년 동안 비가 안 와서 죽어 간 땅에 다시 생명을 소생되는, 만물이 다시 소생되는 일이 나타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생명이 곤란을 받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 되지 못한 일로 이같이 되는 것입니다.
북한도 하나님을 부인하고 김일성 일가를 하나님으로 섬기고, 주체 사상을 하나님 말씀과 같이 받드는 일로 인하여 이들의 나라가 사람도 고생하며 굶어 죽고 많은 생명이 곤란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명의 축복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 이루어 질 때에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5. 생명은 하나님께만 순종 할 때에 살게 됩니다.
생명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게 되는 것이요,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생명은 하나님께 죄를 지은 생명이 되어 사망의 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죽음이라고 말합니다.
생명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육신의 욕심에 따르면 하나님의 노하심을 받아 죽게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절 - 5절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하나님께서 이미 죄를 지어 죽음을 소유한 생명에게 특별한 사랑을 주시어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의 생명의 구주로 보내 주시고 이를 생명의 주로 믿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시어 영원히 죽지 않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었습니다.
생명은 보이지 않으나 실제로 존재하고 생명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관리하시고 주관하십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관리자로 죽이고 살리시는 生死 禍福을 주장하시는 유일한 생명 관리자이십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잘못 된 생명은 咀呪받아 죽은 생명이 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고 예수를 생명의
구주로 믿고 모셔들이는 생명이 될 때에는 영원한 새로운 생명을 주십니다.
성경에는 생명이란 단어가 4개가 있습니다.
1. 하이힘 생명(CHAYYIM)
추상 명사로 생명 자체를 말할 뿐만 아니라, 건강한 생명, 힘찬 생명, 행복한 생명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경외하는 생명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은 아담이 범죄 하기 전에 에덴 동산에 가지고 있던 하나님이 주신 생명입니다.
2. 네페슈 생명(NEPHESH)
네페슈 생명은 肉身에 깃들여 육체의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생명, 즉 생명체를 유지하게 하는 생명입니다.
이 네페슈 생명은 산 사람은 信者나 不信者를 막론하고 육체가 살아 있게 하고 있는 생명입니다.
3. 조에 생명(ZOE)
그리스어로 성도가 지금 가지고 있는 생명, 하나님의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 누리는 생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죽은 생명이 부활이 되어 하나님의 생명을 갖고 누리고 있는 생명을 조에 생명
이라고 말합니다.
아담이 범죄 하여 죽은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부활한 생명을 조에 생명이라고 말합니다.
고린도 후서 2장 16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새로운 생명을 갖게 된 생명을 조에 생명이라고 말합니다.
4. 푸수케 생명(PUSCHE)
푸수케 생명은 인간의 생명체를 유지하고 있는 생명으로 인간의 감정이나 내적 갈등을 나타내는 생명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2장 9절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며”
현재의 생명체를 유지하고 있는 생명으로 信, 不信을 막론하고 인간 모두가 가지고 있는 생명을 말합니다.
구약의 네페슈 생명과 같은 생명입니다.
구약에서는 하이힘 생명, 네페슈 생명으로 히브리어로 말하였고 신약에서는
조에 생명, 푸수케 생명이라고 그리스어로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을 받은 영원한 생명을 가진 사람을 조에 생명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하고, 죄를 지어 죽은 생명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을 푸수케 생명만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은 생명과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의 생명은 근본적으로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함으로 하이힘 생명은 죽고 네페슈 생명만을 갖고 동물과 같이 생명체만 유지하며 살다가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새로운 부활 생명, 영원한 하나님의 생명인 조에 생명을 얻게 되어 새 생명을 가진 자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의 생명과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의 생명은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 생명, 영원한 생명을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구주로 믿음으로 조에 생명을 얻고, 영원한 생명의
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조에 생명을 가진 자로 이 새 생명을 가진 자답게 생명의 부활 주님을 증거하며 다른 사람도 예수 믿고
새 생명을 얻도록 힘쓰며 살아가야 마땅한 새 생명을 가진 자로써 하여야 할 일입니다.
1. 생명은 피에 있습니다.
레위기 17장 11절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생명은 피에 있다고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밝히시었음으로, 우리는 과학적인 이론을 떠나 이 말씀을 믿고 피를 중히 여기며 살아야 합니다.
실제로 사람이나 동물들은 피가 빠지면 죽습니다.
네페슈 생명이나 푸수케 생명은 피가 다 빠지면 죽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다른 생명체가 내 생명을 대신하여 피를 흘려 죽었다면 한 번 죽는 일을 이미 대신 한 것임으로 다시 죽을 수 없는 영원히 살아가는 생명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대신 피를 흘려 죽으셨다는 것을 믿고, 내 대신 예수님이 죽으신 것을 주장하며
살 때에 우리는 다시 죽을 수 없는 생명을 가진 자로 푸수케 생명에서 조에 생명을 가진 자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영원히 사는 하이힘 생명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다니며 믿어야 할 가장 근본적인 믿음은 예수님이 내 죽을 대신 십자가에 달리셔서 피를 흘리며
대신 죽으심을 믿고, 주님이 주신 새 생명을 가진 자로 영원한 생명을 갖은자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하나님께 내 죄를 위하여 바쳐진 줄로 믿는 믿음을 가질 때에
조에 생명, 새 생명, 부활 생명으로 나의 생명이 바뀌는 것입니다.
예수의 보혈의 피가 내 대신 생명을 바쳐 죽으신 그 예수의 피를 믿음으로 조에 생명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 복음 6장 53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고백으로 성찬식에 참례하여 십자가에서 흘리시고 찢기신 그리스도 예수의 피와 살을 먹으며 내 대신 죽으신 예수님을 기념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피를 먹고 마심으로 새 생명을 받은 자로, 조에 생명을 가진 자로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살아가는 영원한 생명을 가진 성도가 된 것입니다.
2. 생명을 가진 자는 움직입니다.
요한 1서 3장 14절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우리가 생명이 붙어 있나 떠났나를 확인 할 때에는 움직임이 있는 여부를 확인합니다.
심장이 움직이고 있는가? 눈동자가 움직이고 있는가? 숨을 쉬는 움직임이 있는가를 확인합니다.
죽은 생명은 움직이지 않아야 당연한 일인데, 만일 죽은 사람이 움직인다면 이는 큰 일이 납니다.
어느 부부가 정이 좋게 살다가 남편이 죽었습니다. 남편이 죽음으로 애처롭게 울부짖는 부인이 너무 안돼서인지 남편이 죽은지 하루가 지난 다음에 하얀 이불을 덮어놓았는데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일어나니 소복을 입고 애절하게 울던 부인이 죽은 남편이 살아났으니 반갑고 좋아하여야 할 터인데 놀라서 기절하여 버렸습니다.
그 후에도 죽었다 살아난 남편이 무서워서 같이 살지 못하고 결국 헤어졌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죽은 사람은 움직이지 말아야 하는데, 죽은 사람이 움직이면 놀라서 다 도망갑니다.
화장을 할 때에 시체가 어느 정도 뜨겁게 타기 시작하면 시체가 힘줄이 당기어지며 불 속에서 시체가 일어나서
움직인다 하여 시체가 춤을 춘다고 합니다.
어떤 짓궂은 사람이 죽은 사람 춤추는 것을 보겠는가 하고 친구를 데리고 화장하는 곳으로 데려가서 유리로 된
불구멍으로 보게 하니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 친구가 죽은 사람이 불 속에서 춤을 추는 것을 보고는 기겁하여
졸도하였습니다.
산 사람은 움직여야 하고 죽은 사람은 움직임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가 조에 생명을 가진 자라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움직임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며 살았노라고 스스로 말하지만, 형제를 사랑하는 움직임이 없는 자는 죽은 믿음의 사람,
죽은 자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2장 14절 - 17절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26절-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자로, 생명을 가진 자답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3. 생명이 있는 것은 썩지 않습니다.
디모데 후서 1장 10절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생명이 있는 생명체는 썩지를 않습니다. 사람도 생명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좋은 관계가 유지되지만 생명이
떠난 후에는 하루도 안되어 썩어지고 냄새가 나게 되어 싫어지는 것입니다.
식물도 살아 생명이 있을 때에는 썩지 않지만 생명이 없는 죽은 나무는 썩는 것입니다.
나라 정치도 썩는 것은 생명이 없다는 증거가 됩니다.
게를 잡아서 먼 지방으로 수송 할 때에 썩지 않게 운송하는 방법이 게를 잠을 재워서 보내는 것입니다.
절반을 죽여서 보내면 썩지 않고 소비지까지 싱싱한 게로 팔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생명을 가진 자는 세상을 썩지 않게 하는 소금이 되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스스로 타락하여 썩는 일이 있는 것을 봅니다. 이것은 이미 생명을 잃은 사람과 같은 것입니다. 세상을 썩지 않게 하는 우리가 먼저 썩어 버린다면 이는 말도 되지 않는 것임을 알고 먼저 나 자신이 소금과 같이 되어 짠맛이 강하게 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모든 사람이 인정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썩어 가고 있고 인륜 도덕이 부패하였고, 심지어 교회까지 썩어 가고 있다고 서슴없이 말하고 있는 이때에, 나마저 썩었다면 생명이 없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조에 생명이 없는 한 모든 생명체는 죽게 되고 썩게 되는 것입니다.
조에 생명을 가진 자, 영원한 생명을 가진 사람은 세상을 썩지 않게, 최소한 내가 속하여 있는 주위만이라도
방부제로의 역할, 소금의 역할을 잘 담당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내 가족 중에 아직 푸수케 생명만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우선 내가 새 생명을 가진 자로 이 사람을
구원하여 내는 일을 열심히 하여 새 생명을 얻고, 함께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살아가는 복을 누려야
마땅한 일입니다.
4. 생명은 양식을 먹어야 생명체가 살게 됩니다.
신명기 30장 19절 - 20절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부종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오 네 장수시니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선택의 자유를 우리가 창조 된 직후부터 지금까지 주시고 계십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을 자유도 있었고, 안 먹을 자유도 있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순종 할 자유도 있고 순종 안 할 자유도 있습니다.
이 자유가 오늘날까지 계속 되어 있고, 자유에는 책임이 따라오듯, 자기가 선택한 결과에 대한 책임을 하나님은 항상 꼭 물으십니다.
복과 저주를 선택할 자유도 있고, 生과 死를 선택할 자유도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자로, 조에 생명을 가진 자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길 이외에는 조에 생명을 계속되게 하는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바짝 하나님 말씀에 달라붙어 순종하는 길, 附從하는 길 이외에는 조에 생명을 유지하는 법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 죽기를 바라고 있는 사람이 없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없지만 실제로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일을 게을리 하고 있는 사람이 많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말을 하면서도 실제로는 그 길을 가지 않고 있는 사람이 많은 것이 한탄스러울 뿐입니다.
마태 복음 7장 13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우리는 믿음의 길을 가는 것이 좁은 길임을 알고, 이 길이 힘들고 어렵지만 생명의 길임을 확신하고, 이 영원한
생명을 얻고 계속 유지하기 위하여 이 생명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모든 생명은 양식을 먹지 않으면 죽게 됩니다.
식물도 물을 주지 않으면 말라죽고, 사람도 일 주일만 물이나 양식을 전혀 먹지 않으면 생명을 잃고 죽게 됩니다.
생명은 양식을 안 먹고사는 법이 없는 것입니다.
조에 생명을 가진 자도 조에 생명이 먹어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으로 매일 양껏 먹으며 살 때에, 건강한 생명이 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때까지 살게 됨으로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의 말씀으로 산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육체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음식을 먹어야 하고, 조에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푸수케 생명의 양식도 날마다 먹어야 하지만, 조에 생명의 양식도 날마다 먹으며 우리의 영육간의 생명을 건강하게 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5. 생명은 번식합니다.
창세기 1장 22절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어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다 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 후에 생명들에게 번식하고 번성하라고 말하였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번식하고 번성하기를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생명을 가졌으니 번식하고 번성하여야 합니다.
푸수케 생명도 번식하여야 하고 조에 생명도 번성하여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 예수의 생명을 가진 자로 특별히 조에 생명이 번식하고 번성하도록 더욱 힘쓰며 살아야 합니다.
아직 자기의 죽은 생명을 갖고 자기의 생명의 어떠함도 모르고 있는 가장 불쌍한 생명들에게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알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이 생명을 얻게 하는 일을 게을리 하여서는 안될 것입니다.
내가 나이가 들어 생식적으로 번식하기 어렵고, 국가 정책이 한 자녀만 낳으라고 하여 더 이상 번식하기 어렵다 하여도, 조에 생명만큼은 더 많이 널리 번식하여 새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히 기쁨으로
살아가게 하는 일에 더욱 힘쓰며 살아가야 마땅한 일입니다.
정리:
하나님께서는 유일하시게 모든 생명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고 보존하기고 또 심판을 하십니다.
식물이나 동물의 생명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소멸되고 없어지지만 오직 하나님의 생기를 창조 때에 받은 우리
인간의 생명은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이 되었습니다.
하이힘 생명이 되어 영원히 하나님과 교제하며 행복한 생명으로 살게 되었지만 마귀의 꼬임이 빠진 아담 부부로 인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불순종함으로 저주받은 생명 푸수케 생명이 되어 지옥에서 영존 하는 심판 속에 영생하는 생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나의 생명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드림으로
우리는 새로운 생명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아 믿음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아
가는 조에 생명, 부활 생명이 주어진 것입니다.
아직 이 세상에는 죽은 생명만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푸수케 생명만으로 살아가다가 죽음과 동시에 하나님의 심판으로 지옥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는
생명인 줄도 모르고 푸수케 생명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고 사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은 것을 볼 때에 심히
가슴아픈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 부활 생명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 새 생명을 얻고 소망 가운데에서 살고 있음을 알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하나님께 경배하고 예배하며 찬송 속에 살아가야 합니다.
조에 생명을 가진 우리는 아직 자기의 생명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살고 있는 불쌍한 사람들을 하나님의 생명을
갖게 하는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나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나의 육체의 생명도 사랑하고, 영원한 생명도 사랑하여 나를 하나님 앞에 귀한 자로 다듬으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나에게 조에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신 주님을 생각하고 항상 주님께 감사하며
주님의 뜻을 따르며 순종하며 영광을 돌리며 주님이 주신 귀한 생명을 귀히 여기고 다른 사람에게 이 영원한
생명을 알게 하는 일에 힘쓰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